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5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끝까지 해내는 힘이다.
지금 준이는 한국나이로 9살이다. 준이의 4살, 5살 때 모습을 기억하는 지인들은 오랜만에 준이를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늘어난 외형적인 변화 말고도 눈빛도 더 초롱초롱해졌고 자기표현도 (그전보다는) 확실해졌고 궁금한 게 많아져 질문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준이의 치료에 올인한 지 4년 만의 변화였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가 아니라 치료에 성실히 따라준 준이, 묵묵히 함께 해준 형과 남편, 여러 치료 선생님들, 또 준이를 맡아 주셨던 여러 선생님들과 동네 패밀리들- 이웃사촌 이모들, 형들, 동생들-의 공이 크다. 그중에서도 나는 준이의 노력을 기적의 1등 공신으로 꼽고 싶다.
준이는 느린 학습자가 맞다. 불안도가 높아 뭐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성실성과 끈기는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올해 학교에서 보는 수학 단원평가에서 준이가 처음으로 100점 받던 날, 나는 이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 100점 받았어."
교문 앞으로 마중 나간 엄마를 발견하고 다다다 뛰어오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준이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 순간 얼마나 기쁘던지! 아니, 그냥 기쁘다고 말하기엔 부족했다.
'그래, 너도 할 수 있어. 봐, 해냈잖아.' 겉으로는 준이에게 너무 대단하다고, 잘했고 축하한다고 격려해 주면서 속으로는 앞으로도 준이와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100점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이제껏 아이와 잘해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앞을 보고 나가라는 당근이자 채찍질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유난히 시지각 발달이 약한 준이가 도형 단원을 다 맞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구체물을 직접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또, 지면에서 무수히 많은 문제들을 풀어왔는지... 목표는 100점,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이번 단원에서 알아야 할 것들을 빠짐없이 체크하고 꼭 알고 넘어가자는 마음으로 준이와 단원평가를 준비하였다. 남들은 그냥 보기도 한다지만 준이의 경우는 준비를 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아서 선생님이 시험을 언제 본다 알림장에 미리 알려주시면 그때부터 매일 조금씩 시간을 들여 나와 함께 공부하였다.
준이는 한 번 앉으면 화장실 갈 때를 빼고는 웬만해서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가끔 다른 생각을 할 때는 있었지만 햇수가 갈수록 집중력도 점점 좋아졌다. 그럼, 이런 준이의 엉덩이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남편을 많이 닮은 윤이와 달리 준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 윤이는 친탁, 준이는 외탁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준이에게도 남편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아빠를 빼다 박은 윤이에 비해 준이는 얼굴형이나 체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엄마인 나를 많이 닮았다. 부모에게 모든 자식은 다 소중하고 애정을 갖고 키우게 되지만 나를 더 닮은 자식은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심지어 과거의 내가 그렇게 커 왔기 때문에 나와 동일시하게 된다. 첫째 윤이를 키우면서 예민하고 입이 짧아 뭐든 잘 먹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남편이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 같아. 쟤는 잘 먹게 하려면 운동을 시켜야 돼."
그래서 우리 부부는 윤이는 가벼운 산책이나 심부름 등 바깥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나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남편의 어렸을 적 경험이 아이의 체질을 이해하도록 나를 도와 보다 현명한 육아를 할 수 있게 해 줬다.
윤이를 키우면서 나와 달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남편의 조언을 많이 따랐다면 준이를 키우면서는 내 어렸을 적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어린 시절의 나는 순했고 조용한 편이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빨리 트인 아이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한 박자 느리게 이해했고 새로운 개념을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묵묵히 버텨내는 힘, 이른바 '엉덩이 힘'만큼은 자신 있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붙들고 반복하는 내 모습은 아버지의 끊임없는 격려 속에서 길러졌다.
준이가 돌도 되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 생전, 6.25 전쟁을 어릴 때 겪으셨다. 이북에서 피난 와 1.4 후퇴 때 다리가 이미 폭파된 꽁꽁 언 한강을 누나 손을 잡고 건넜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와 가난한 실향민이 되어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자란 아버지는 오직 공부 하나로 자신의 척박한 삶을 개척했다. 명문대를 졸업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가족의 삶을 일으켜 세웠다. 세상은 아버지를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 남자)이라 불렀지만, 나는 안다. 그 기적의 이면에는 매일같이 새벽부터 책상 앞을 지킨 무수한 시간과 굳은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그런 아버지는 나의 느린 출발을 단 한 번도 탓하지 않으셨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너는 네 속도로 가면 된다."
그 말씀 속에는 자식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존중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믿음을 발판 삼아 한 걸음씩, 비록 느리지만 뚜벅뚜벅 나만의 속도로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 준이의 모습 속에 어릴 때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들은 느린 학습자다.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고, 때로는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학습 앞에서건 오래 버티는 힘,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는 나와 꼭 닮았다.
특히 우리 모자는 책을 잡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준이는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들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자리에서 미동조차 없다. 그것은 나 역시 어린 시절에 그러했던 모습이다. 책 속에 푹 빠져 집중하는 힘은 시험 문제 하나는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끈기와 닮아 있다. 또한 준이는 반복성이 필요한 학습에서도 엉덩이 힘을 발휘한다. 연산 문제집을 한 장, 또 한 장 차근차근 풀어가며 받아쓰기도 완벽하게 숙지할 때까지 반복한다. 틀린 단어나 문제는 여러 번 다시 풀어보거나 써본다. 그러다 마침내 능숙하게 해내는 순간, 준이의 얼굴에는 성취감이라는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에서 나는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가르침이 그대로 준이에게로 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준이의 느린 걸음을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라고 말해 준다. 느린 걸음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힘이야말로 앞으로의 삶을 지탱할 가장 든든한 자산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아버지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꾸준히, 반복적으로 학습한 것은 어느 순간 분명히 쌓여 자신의 것이 된다. 성실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는 것을 믿는다.
아버지로부터 나에게, 그리고 나에게서 다시 준이에게로.
이 엉덩이 힘의 유산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끈기와 성실이라는 진리를 우리는 모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배워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