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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 E형 엄마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6

by Rani Ko
엄마가 먼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아이도 따라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엄마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준이의 종합발달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3주 동안 나는 병이 나고야 말았다. 밤에는 준이의 결과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다시 날이 밝아오면 두 아이 케어하랴, 집안 살림하랴 몸이 남아나질 못했다. 피곤할 때 간혹 입술이 헐고 입 옆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수포가 생기는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이번에는 입이 아닌 두 눈으로 왔다. 눈두덩이에 물집이 잡히고 고름이 줄줄 새어 나왔다. 눈을 뜨기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안과는 집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했는데 그곳을 준이를 데리고 매일 다녔다.


준이의 검사지 중에 엄마가 작성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학군지의 안과는 늘 문전성시다.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 푹 쉬어야 나아요. 잘 먹고 잘 자야 됩니다."

고름진 두 눈두덩이를 소독해 주시며 의사 선생님이 당부하셨다. 눈에 넣는 약, 먹는 약 종류별로 처방을 받아 약국까지 들러 나왔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픈 게 차라리 났다고 생각했다. 내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지금의 준이의 상태를,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또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있었다. 나에게 가학을 가하는 순간은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렇게 내 몸을 계속 괴롭혔다.




준이에게 1분 1초라도 바깥세상을 더 구경시켜 주고 하나라도 보여주기 위해서 병원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갔고 오는 길은 30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 걸음으로 30분이지 46개월 준이의 걸음걸이로는 거의 4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때가 21년도 7월 초라서 서울은 장마 기간이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이와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었던 기억이 난다.


"준이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 한 번 만져봐, 차가워."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아이에게 언어치료를 시도하는 엄마다. 이것이야말로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직접 비를 맞으며 하는 살아있는 언어체험 아닌가! 퉁퉁 부은 눈을 부릅떠가며 아이에게 재차 말을 건넨다.

엄마 : 준이야, 지금은 장마 기간이라서 비가 자주 오는 거야. 비가 시원하게 내리네!

준이 : 엄마, 비가 많이 온다.

엄마 : 그래, 비 와서 오늘 준이는 무엇을 들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신었지?

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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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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