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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늘도 달린다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7

by Rani Ko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달라진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남의 아이 웃음 소리에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두려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는 이 여정 속에서 나는 '부모'라는 이름이 얼마나 깊고 무거운 의미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느린 학습자인 준이를 키우며 나는 발달센터와 대학병원 언어치료실을 오랫동안 다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케이스의 발달장애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치료 일정에 맞춰 하루하루 움직이며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피로와 지침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기도 했다.


아동발달센터에 수업을 받으러 들어갈 때면 준이는 늘 데스크에 앉아계신 선생님들께 반갑게 또, 씩씩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 순간 대기실에 앉아 있던 다른 부모님들은 준이를 항상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셨다. 그 눈빛 속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동지애가 느껴졌다.


치료실에서 만난 엄마들 중에 중증자폐아를 돌보는 한 어머니가 계셨다. 손이 벌겋게 퉁퉁 부어올라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그 아픈 손으로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치료실을 찾아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장이라도 그 분의 손을 붙잡고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낫게 해줄 수 있는 연고가 있다면 사서 발라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혹시나 실례가 될까봐, 놀라실까봐 차마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지만 그 분의 부은 손을 보며 내가 그렇게 마음 아팠던 이유는 그 손이 곧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벌겋게 부은 두 손을 꼭 붙잡아 주고 싶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 발달이 느린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은 늘 어느 한 구석이 아프고 시리다. 내 아이가 남들과 똑같지 않기 때문에 지고 가야하는 삶의 무게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다. 나 역시도 첫째만 키울 땐 그런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으며 그들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으니까. 어느 날은 우리 아이도 곧 말을 잘 할 수 있고, 퍼즐도 잘 맞출 수 있고 금방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될 것 같은 희망에 부풀어 오르다가도 다음 날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구는 모습에 절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널뛰듯 아이의 모습이 변하니 엄마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롤러코스터가 오르내리듯이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되니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정신적으로도 지치고 내 아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야무지게 본인의 일을 처리 못하니 일상 생활부터 학습까지 온통 엄마 뒤치닥거리가 필요하니 몸도 지친다.


몸과 마음이 아프면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간혹 매스컴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나 그 가족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할 땐 가슴이 철렁한다. 극한의 절망감을 느껴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전 같으면 '참 안됐다.'하고 넘겼을 소식에 이제는 온 마음으로 그 고통을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가 우울증과 절망감에 빠지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아이는 결코 건강하게도 행복하게도 자랄 수 없다. 얼마전부터 나는 슬로우 러닝을 시작했다. 아이 옆에 붙어 있으니 활동량은 점점 적어지고 스트레스도 받으니 그걸 먹는 것으로 푸는 습관이 생겨 살도 찌고 몸이 점점 안좋아지는 걸 느껴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찾다가 달리기로 정착한 것이다. 다른 운동은 신체에 무리가 가서인지 온 몸이 몸살 온 것처럼 아파 지속할 수가 없었지만 슬로우 러닝은 운동 후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괜찮았다. 나는 이제 일주일에 3번을 매번 준이와 1시간씩 뛴다. 준이를 맡길 데도 없거니와 아이도 걷고 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런@@라는 앱을 다운 받아 슬로우 러닝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ai가 지령해주는 데로 몇 분 뛰고, 또 몇 분은 걷고를 반복하다보면 은근히 땀도 나고 개운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시원한 물을 사서 나눠 마시고 아이와 함께 걷다보면 서로 교감도 할 수 있고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도 든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는 운동해야 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엄마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고 바르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고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발달이 느린 아이일수록 더 많이 움직여야 좋다. 운동은 다다익선이다. 엄마도 아이도 운동을 해야 한다. 준이도 예전에도, 지금도 많은 운동을 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두 눈에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걸릴 정도로 아파본 적이 있기에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몸까지 아프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 부모는 곧 우주지만 특히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 엄마는 더욱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라도 엄마는 아프면 안되고 건강해야만 한다. '신이 손이 부족해서 엄마라는 존재를 아이에게 보냈다.'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 날 그 어머니의 손을 보며 이 말의 의미가 가슴깊이 와 닿았다. 아프셔도 힘내시라고, 그리고 하루 빨리 나으시라고 온 눈빛으로 그 분께 내 마음을 전했다.



너무나 다행이며 감사하게도 시간이 흐르며 준이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고 발전해갔다. 해가 갈수록 중증 장애아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준이가 장애아가 아니라 그저 언어지연, 시지각 발달지연, 소근육 발달 지연등의 느린 학습자란 사실에 마음 속 깊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아이만 나아지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이건 참 간사하고 속좁은 비교의 마음이구나.'하는 자책이 뒤따랐다. 준이는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는 아닌, 결국 애매한 발달 지연 상태였기에 7세 생일이 있는 달에 센터의 치료를 종결하게 되었고 마지막 수업을 받고 떠나는 날에는 묘한 슬픔까지 밀려왔다. 센터 수업을 종결하였다는 기쁨과 서운함, 안도와 내 아이만 떠난다는 미안함의 양가 감정들이 마구 뒤섞인 복잡한 마음이었다.(대학병원 언어치료는 그 후로도 2년간 더 지속되었다. 7세 생일이 있는 달에 종결된 수업은 센터의 감각통합 수업과 놀이치료 수업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준이는 열심히 노력하며 학교를 다닌 덕분에 걱정했던 학습부진도 학습 장애도 아직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금방 뒤쳐지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나와 준이는 더 건강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와 준이는 오늘도 달린다.


엄마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다.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결국 부모의 건강과 행복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준이를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발달 센터로 향하는 수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가 가는 길이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날 센터 대기실에서 주고 받았던 따뜻한 눈빛을 기억하며 조용히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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