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가끔 말한다. "난 세 명의 여자랑 사는 것 같아."
화장한 아내 = 센 캐
화장 안 한 쌩얼 아내 = 이상적임
안경 쓴 아내 = 고딩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이 세 모습이 참 다른 것 같다.
"자기야, 난 자기 화장 안 한 모습이 제일 예뻐!"
나는 공항 면세점 화장품 업계에서 7년 일했지만 화장을 정말 못한다. 거의 스킨케어 위주였기에 메이크업은 정말 어렵고,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없다. 그래서 누구 결혼식 날이나 받는 특별 메이크업을 받으면 너무도 날아갈 듯이 기쁘다. 어쨌든 그런 내가 화장을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낫다는 남편. 화장을 하면 작은 눈을 덮어줄 아이라이너가 깊게 박히기에, 남편 눈에는 맨 눈이 훨씬 귀엽다고 말해준다. 진하게 그은 아이라이너는 나와 안 어울린다며.
어느 날부턴가 송년회 파티 가는 날 등의 특별한 날들이 섞이면 연예인처럼 메이크업을 받는다. 물론 돈을 주고, 물론 남편 몰래다.
그렇게 들어오면 남편이 "우와 자기야! 오늘 되게~ 예쁘다. 화장이 왜 이렇게 잘 먹었어?"
눈치 귀신인 남편인데 꿈에도 모른다. 일반인이 메이크업을 받는 다는 걸 이해할까? 남편에게 왜 여기다 돈 쓴다는 말을 못하겠지? 어쩌다 있는 일인데, 남편은 은근 쿨하게 신경 안 쓸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돈 보다
챙피함 같은 게 있는 것도 같다. 모르겠다.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나를.
우리는 결혼 9년 차를 맞았고 아이는 없다. 서른여섯 살의 마지막 11월에 결혼했으니 늦은 결혼이었을까?
연애 3개월 때 난 이 남자랑 결혼해야겠다고 확고한 마음을 먹었다. 만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여보"라는 호칭으로 날 불렀다. 난 그때까지 그런 말을 처음 들었고, 진짜 이 남자 "끼가 다분하다. 다른 여자에게도 이런 거 아냐?" 란 생각이 들었었는데, 본인 말로는 자기도 그게 처음이라고 그랬다. 봉사활동에서 처음 만난 날, 대기 장소 롯데리아 앞에서 날 보고 운명처럼 "저 여자다" 싶었다고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만이 알겠지.
그러다 우린 결혼에 골인. 진짜로 첫 1~2년, 콩깍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너무 근사한 내 신랑이라 여겼고, 그에게 예쁨 받고 싶었고, 귀여운 아내 모습을 보존했다.
그러다 결혼 3년 차에 우리는 땅을 사고 집을 지었는데, 우리는 그때부터 어긋났다.
매 순간의 고난도 결정들, 돈, 시공사 사기, 사람 상처, 덩달아 회사 스트레스까지 몽땅 초특급 폭탄 선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미친 듯이 미운 말들을 뱉어내고 악을 썼던 것 같다. 얄미움이 하늘을 찌르고, 뒷통수만 봐도 때려주고 싶다는 게 뭔지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가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화가 온 게 아닐까 한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처리되니까. 아니, 인정을 해버리니까 가능했던 일 같다. 그러다 집이 안정되면서 우리는 예전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다행이었다.
가정이 다시 안정된 40대 초반, 나는 전처럼 책도 읽고 차분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하루하루 집중하려 했던 시간들은 쌓여갔다.
내가 첫 책을 냈을 때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 그런데 있잖아! 나 진짜 자기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글 쓰는 모습 보고 놀랐어.
그런데 그걸 계속하더니 진짜 책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신기하네~"
그렇게 두 번째 냈을 때도 "또 낼 줄은 몰랐다."
마라톤 10km 다녀온 나를 보고는 "기록 좋아서 놀랐다."
이번 다이어트 도시락 싸서 회사 출근하는 날 보고는 "와,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는 혜란이의 이런 모습이라니. 진짜 강력함에 놀랐다."
어느날 보니깐
"자기가 해낼 줄 몰랐어!"에서 지금은 "난 자기가 해낼 줄 알았어"로 바뀌는 게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지금, 제일 가까운 내 사람에게 오늘 내일 같은 모습이 아닌 활기 있고 자율적인 아내로 바라봐 줌이 좋았다.
물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시험을 보거나, 손님 초대 음식과 환대를 하거나, 자기계발 줌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서로 응원해준다.
예전에 "가족을 손님처럼 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렸다. 가족인데 손님처럼?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잘 모르는 손님에게 하듯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 감사를 표현하는 것.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을 때 진심으로 놀라워해 주고 맞장구 쳐주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매일 같이 붙어있을 순 당연히 없지만, 새 모습으로 서로를 응원해주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이번 3주 스위치온 다이어트로 나는 또 한번 남편에게 응원을 받았다. 체중 감량과 동시에 라이프스타일 리셋이 되버리니, 집 분위기도 더욱 긍정적이다.
외모의 변화가 세 명의 여자 같다면, 도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다양한 나를 보여줄까.
남편과 나는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따로 또 같이' 발견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이다.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외모든, 삶의 모양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