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후에 대한 불안

by 랭크작가

어쩐지 엄마는 언젠가 자신의 노후를 내가 책임질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가능성 자체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부모를 생각하면 따뜻함보다 압박이 먼저 떠오른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 슬픔을 외면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감정은 내가 차갑다는 증거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게 짐을 들어왔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정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애정이 지쳐버린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은 원래 무한하지 않은데,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유독 무한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사실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는 마음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책임감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감정이다. 부모를 생각할 때 따뜻한 애정이 먼저 올라오는 사람이라면 책임이라는 말이 그렇게까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정이 이미 조금 닳아버린 관계에서는 같은 책임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나는 엄마를 완전히 외면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삶을 당연히 내가 떠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엄마의 노후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 자신의 노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를 더 사랑하려고 애쓰는 일이 아니라, 엄마와 나 사이의 경계를 더 정확하게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마음속에서 먼저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다. 나는 엄마를 도울 수는 있지만 엄마의 인생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딸이지 보호자도, 배우자도, 구원자도 아니다.


또한 구체적 방법으로는 마음만 정리해서는 부족하고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첫째, 엄마의 감정을 전부 받아내는 습관을 줄여야 한다. 엄마가 불안하거나 외롭거나 서운해할 때 그 감정이 곧바로 내 책임이 되지 않도록 한 겹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엄마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이건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같은 식으로, 공감은 하되 떠안지는 않는 태도다. 이해와 책임은 다르다는 것을 내 안에서 계속 구분해야 한다.


둘째, 도움의 범위를 추상적으로 두지 말고 현실적으로 정해야 한다. 나중에 도울 수 있다, 책임질 수도 있다 같은 막연한 생각은 불안을 키운다. 대신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할 수 없는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면 정기적인 안부와 병원 동행 같은 실질적 도움은 가능하지만,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나 무제한의 경제적 부양까지는 아니라는 식의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한다. 경계는 상대에게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내 안에서 분명해야 한다. 셋째, 엄마의 노후 불안을 전부 내 불안으로 번역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과 엄마의 미래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을 현재의 죄책감으로 선불 결제하듯 살지 말아야 한다. 그때 가서 판단할 수 있는 것까지 지금 미리 다 짊어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노후를 생각할 때 동시에 나의 노후를 함께 생각하는 일이다. 나는 내 인생의 후반부를 어떤 얼굴로 맞고 싶은가. 원망과 소진 속에서 겨우 버티며 늙고 싶은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의무는 감당하되 내 삶의 존엄도 지키면서 늙고 싶은가. 부모를 돌보는 문제는 결국 내 미래의 윤리를 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나를 완전히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효를 수행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희생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지속 가능한 삶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식 세대가 자기 삶을 지켜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덜 비극적인 관계를 물려주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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