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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Jun 09. 2023

빛나는 사람아

라니에세이 9 #불성

Intro

매해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올 때면 그날의 의미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기마다 삶에 적용하는 가르침이 다르고, 그에 따라 불교를 대하는 의미도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엔 부처님의 탄생게를 종종 떠올리곤 한다. 우리는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존재라는 것. 그 빛으로 마땅히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 부처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이번 글은 빛나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다.



올해는 봄 날씨가 유난히 변덕이었어. 초봄답지 않게 더운 날이 이어지더니 꽤 많은 비가 내리기도 했었지. 일교차도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 이런 날씨에는 특히 감기 조심해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환절기 감기는 피해갈 수 없었잖아. 심한 감기몸살을 앓고 한 달 내내 기침감기와 씨름을 했는데 며칠 전부터 또 목감기, 코감기에 시달리고 있으니, 된통 고생하고 있지 뭐야.


아픈 건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지? 증상이 보이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고, 약 처방을 받고 나서야 안심했어. 사실 평범한 감기였지만, 그동안 감기를 앓았던 기억이 손꼽을 정도로 적은 데다가 특별하게 아파본 적이 없어서인지 온 신경이 다 쓰였던 것 같아. 환절기에 옷을 두껍게 입을걸.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새겨들을걸. 괜한 후회와 함께 쓸모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더군. 이 정도 감기에도 유난인데, 혹시 나중에 더 크게 다치거나, 큰 병에 걸리게 되면 어떡하나. 하면서 말이야.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어.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고민, 마음 쓰는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 꽤 진중하고 무거웠던 대화가 오고 갔지. 깊었던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감기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어. 몸살이 심했던 날엔 악몽까지 꿨었다는 말도 괜스레 전했던 것 같아.


“몸이 아픈 건 정말 싫어요. 아픈 채로 있으면서 기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더라고요. 아프면 빨리 회복하려고 병원에도 바로 가는 편이고, 약도 잘 먹으려고 해요.”


씩씩한 듯 미주알고주알 건넸어. 내심 걱정해주길 기대하며 꺼낸 말이기도 했는데. 돌아온 대답에 조금 화끈거렸지?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듯했는데도 말이야.


“맞아요. 다들 그래요. 몸이 아픈 건 싫죠. 그래서 빨리 나으려고 약도 먹고 더 건강도 챙기죠.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데 말이에요...”


대답을 마냥 흘려듣지 못했던 이유는 어쩌면 내 마음이 찔려서였을 거야. 흐릿했던 그의 말끝을 이어받아서 나는 속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잖아. ‘그런데 왜... 란희쌤은 마음이 아프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거죠?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 말이에요.’라고. 그리고 이 한마디는 그날 우리가 나눈 고민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되었어.


그동안 남들보다 더 마음을 살피고 잘 돌보았다고 자부했던 것 같아. 이전에 비해 많이 노력도 하고 있고.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해치던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어. 잘못된 일이 생기면 원인을 나의 부족함에서만 찾는다던가, 다른 사람의 잘난 모습만 바라보며 그에 비해 못나 보이는 나를 질타하는 식이었지.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인정받으려 하면서 내가 가진 긍정성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했어. 내 마음을 잘 살핀다고 자부했지만, 나를 해치는 마음만큼은 미처 살피지 못했더라고. 몸이 아픈 건 빨리 나으려고 늘 애쓰면서 왜 마음은 늘 자처해서 고통을 가하는 것인지.


가끔 불안정했던 지난날을 떠올려봐.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동력은 하나였던 것 같아. 다른 사람을 의지했던 것도 아니었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며, 뭉뚱그려 문제를 덮어두었던 것도 아니었지.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빛나는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무언가를 한번 믿어보자고 다짐했었어. 그건 나에 대한 믿음이자 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 같기도 해. 그 믿음이 빛이 되어준 덕분에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어. 스스로 규정해놓은 한정된 ‘나’에서 한 꺼풀 벗어났던 기회이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살다 보면 또 언제든지 모진 말로 스스로를 대할 수도 있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일에 더 익숙한 우리들이니까.


그럴 때마다 다시 불러봐. 너는 빛나는 사람이라고. 예전에도 빛났고 지금도 빛이 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빛날 거라고. 자신을 부르면서도 어쩌면 나를 둘러싼 수많은 ‘너’를 향하는 목소리이기도 할 거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안의 빛나는 무언가를. 그래서 너는 늘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Bookmark   나를 살린 문장 


양가의 자식들이여, 실망하지 말고 힘을 기울여라. 언젠가 그대들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현존하는 여래가 현현할 것이다. 따라서 그대는 [보통의] '중생'이라기보다 '보살'이 될 자들이다. [그리고] 또 [다음 단계에서 그대들]은 '보살'이라기보다 '붓다'가 될 자들이다' - <여래장경> 중에서


✏️<여래장경>에서 불성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아직 부족한 지혜로는 알 수 없지만. 현현하고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이미 안도가 된다. 때로는 작용의 힘이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다. 늘 이곳에 머무를 수 있기를, 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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