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에세이 3. 꽃 : 꽃이 내게 전해 준 법문
Intro
천천히, 봄이 걸어오고 있다. 봄이 더욱 봄답게 느껴지도록 하는 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서 새 잎이 돋아나고,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산책길에서 벚꽃, 수선화, 목련, 튤립에게 눈 마주칠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감이 생긴다. 노관심의 영역에 포함되었던 꽃. 꽃이 내게 격려와 응원으로 다가 온 순간 그 의미가 달라졌던 것 같다. 꽃을 통해서 결이 다른 두 가지 행복을 알게 된 건 마음과 관계에 전환을 일으키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번 글은 꽃이 내게 전해 준 법문 이야기다.
꽃. 꽃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더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관심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던 것 중 하나가 꽃이었다. 들이나 길가에 핀 꽃에 딱히 시선을 두지 않았으니 꽃이 나에게 의미가 되지는 못했다. 꽃을 사거나 꽃을 선물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하지 못했다. 지인들에게 꽃 선물을 하는 일도 당연히 없었다. 곧 시들어 버리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꽃인데, 비싸게 돈 주고 뭐 하러 산담.
그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골목길 담장에 핀 꽃, 산책길, 도심의 길가에 조성해 놓은 꽃을 보며 참 예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맺힐 때부터 꽃송이가 환하게 피어날 때, 그리고 제 몫을 다 한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절마다 피어나고 지는 꽃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기에는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쉬워하기도 했다.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 좋아하는 색감의 꽃을 직접 골라 한아름 품고 법당으로 향할 때도 많았다. 꽃을 품은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설레고 가벼웠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혹여라도 상처가 나지는 않을까, 꽃다발을 소중하게, 정성스레 품고는 했었다.
1, 2주에 한 번씩은 나만의 작은 기도 공간에도 두어 송이 꽃을 꽂아두었더랬다. 내 방 작은 부처님을 향한 소박한 꽃공양이었지만, 꽃은 기도 하고 수행하는 그 마음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듯했다.
꽃을 좋아하게 된 건 아마도 법정스님의 법문을 자주 접하고 난 후부터이지 않았을까. 한결같이 꽃과 나무와 자연을 말씀하시던 법정스님. 강직하고 올곧은 음성으로 법을 설하시다가도 꽃과 자연을 음미하는 순간에는 부드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꽃을 대하는 진실함에는 꽃에 대한 감사함이 오롯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다 꽃답기 때문이다’라는 그 말씀에 나 자신도 꽃 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선화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핀다. 먼저 핀 수선화를 보고 국화는 시샘하지 않는다. 피는 시기가 다를 뿐 언젠가는 피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먼저 피었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늦게 핀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내 꽃이 더디게 피는 것 같아 괜히 재촉하지 말라. ‘그대’란 꽃은 지금 최선을 다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별 의미 없었던 꽃이 내게 위안이 되어주었던 건 칼럼에서 읽은 대목 덕분이다. ‘나는 대체 언제쯤 꽃 피울 수 있는 거야’ 라며 먼저 꽃을 피운 것 같은 또래들과 스스로를 비교할 때였다. 비교하여 나를 한껏 낮추어 보게 만들었던 그 마음을 거둬들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꽃의 비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 아주 깊숙한 곳에 나도 모르는 작은 씨앗이 심겨 있을 거야. 이 정도면 뿌리도 단단하고 강할 테니 어떤 풍파에도 잘 견디고, 무던할 수 있지 않을까? 때 맞춰 물 주고 빛 쬐어 주는 친절한 인연도 만났으니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애쓰기만 하면 돼’ 라며, 꽃의 비유를 상기하면서 주문처럼 외웠던 다짐도 떠오른다. 어떤 색깔, 향기, 분위기를 자아내는 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씨앗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테니 믿고 나아가보자고, 꽃을 보며 늘 결심했었다.
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저절로 편안해지고 밝아졌다. 이전에 느꼈던 행복감과는 결이 다른 것 같은, 다른 색감의 행복감을 느끼게 된 것도 꽃이 전해 준 선물이었다.
스스로를 ‘고삐 풀린 망아지’라며 농담 삼아 말하던 때.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무척 좋아했었다. 파워 ‘E’ 성향을 지녀 어딜 가든 주인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기도 했다. 모임에서는 신나게 놀기도 하지만 진솔하게 마음을 나누는 기회도 되었기에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픔의 기억은 함께 어루만져주고, 좋았던 기억은 더 많이 나누며 곱절의 행복을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는 그런 만남이, 모임이 조금 힘들게 느껴지게 되었다.
사람들 속에 함께하는 내 모습을 밝고, 명랑하고, 활동적이라고 자부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들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 시점도 ‘들뜸’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 물론 더없이 행복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행복은 ‘들뜸’이라는 마음의 성향을 동반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 들떠있던 시간과 그렇지 않았던 고요한 시간의 간극이 꽤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간극을 오고 가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감,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법당에 공양을 올리기 위해 꽃집에 들렀다.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 주황색 꽃을 직접 고르고 예쁘게 묶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전해받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절에 가던 길. 꽃을 품은 마음은 설레었고, 환했다. 꽃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행복에도 종류가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되었다.
‘전날 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참 즐거웠는데.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고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설렐 수 있구나’ 두 가지 즐거움의 차이를 꽤 오랫동안 사유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들뜸과 함께 하는 행복과 고요함이 함께 하는 행복, 그 두 가지는 결이 다르고 색감이 다른 행복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두 가지 행복을 느낀 이후, 생활의 무게추가 조금씩 옮겨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좀 더 살필 것.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에 마음이 들떠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것. 그리고 누군가와 꼭 함께 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편안해질 수 있으니 어떠한 대상에, 존재에 집착하지 않을 것. 고요함 속에서 머무르는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꽃과 관련된 법정스님의 법문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따로 있다. 법정스님 6주기 추모 특별법문 영상에 담긴 말씀이다. 법정스님께서는 ‘꽃 피는 일에 담긴 세상의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법문 말미에서 이렇게 전하셨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난 꽃과 잎들이 지니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길 바랍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가르침에 답답해했던 적도 많았다. 한참을 헤매다가도 꽃과 나무와 하늘의 비유를 들면 이내 그 가르침은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의 개수가 팔만사천이 넘는 이유는 중생들의 성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각각 다른 색과 향을 지닌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딱 맞는 설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꽃의 비유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기설법으로 느껴진다. 말로써 다 전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꽃에는 그 가르침이 모두 담겨 있다는 것. 풀리지 않았던 내 안의 많은 문제들을 꽃과 잎과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며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 들어 마음이 설렘으로 물드는 걸 보니 곧 꽃 피는 계절, 봄이 다가오는가 보다. 그래서 꽃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법정스님의 글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한 생각.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 꽃은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 겨울이고 사계절에 모두 피어난다. 설렘, 풋풋함, 싱그러움은 한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매 순간순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피어나고 지고 또다시 피어나는 꽃과 잎들에게 마음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매 순간순간이 설렘이고 싱그러움일 테다.
Bookmark 나를 살린 문장
"꽃을 올리는 것은 모든 것에 집착이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요.” - 영명 연수선사 만성동귀중도송 중에서
"꽃피어야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룹니다.” -법정스님
"세상 사람들은 이 한 송이 꽃을 보고서, 대개 아름답다고 하거나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다. 마치 꿈에서 보는 것처럼 본다. 이 꽃과 자기가 하나가 되어서 보는 사람이 없다. 바라보는 자기와 보이는 꽃이 한 뿌리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대가 말하는 것은 이치로 따지면 그렇다. 그대나 조법사는 관념의 유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것으로 선을 안다고 하지 말라. 불법을 알았다고 하지 말라." - <선의 단맛을 보라: 생사를 넘나드는 선사들의 법거량> 중에서
꽃의 비유 덕분에 마음이 환해졌던 글들이다. 이 말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꽃 피는 일을 통해서도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