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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Mar 31. 2023

공덕은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을 매길 수 없다.

라니에세이 4. 공덕

Intro

‘나무관세음보살님’이라고 말하면 합장 반배를 하는 돌잡이 조카, 재를 지내는 스님의 독경 소리에 맞춰 경전을 곧잘 따라 읽던 조카의 모습에서 어렸을 때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모가 시키니까, 엄마 따라서하는 기도일 테지만 그 공덕의 크기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심어놓은 씨앗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극진하게 기도를 하는 사람이든, 스치듯 그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이든 기도 공덕은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을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집에서 모시던 제사를 절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좋은 점이 여러 가지 생겼다. 그중 한 가지는 1년에 적어도 세 번은 가족들과 함께 절에서 기도하는 인연이 생겼다는 점이다. 우리 가족들도 불자이긴 하지만 신심이 깊은 건 아니다. 나들이 삼아 가끔 절에 가거나 부처님 오신날 맞춰 연등을 한 개씩 다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에 가족들에게서 기도나 수행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비록 일 년에 세 번뿐이지만 다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게 귀한 인연이라고 여겨진다.


조카들도 이모 따라, 엄마 따라 기도하는 시늉을 보이곤 한다. 조카인 초등학교 5학년 도현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엄마를 따라 절에 다녔다. 합장을 한다거나 법당에서 삼배를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도현이가 일곱 살 때인가. 법당을 나서며 반야심경 앞 구절을 외우던 모습에는 모두가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물론 그 아이에게 그때의 반야심경은 그냥 재미 삼아 부른 노래(?)였을 뿐이었다ㅎㅎ).


지난 추석 명절, 절에서 합동차례를 지낼 때였다. 차례를 지내는 내내 두 손을 모으며 차분하게 앉아있는 도현이의 뒷모습에서 간절함 같은 게 느껴졌었다. 평소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장난치며 떠드는 아이가 얌전하게 기도하며 앉아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제사가 끝나고 도현이에게 물어봤다.


“도현아, 제사 지내는 동안 합장하면서 뭐 하고 있었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이라고 했지.”

”관세음보살님 부르면서 무슨 생각했는데?”

”관세음보살님~~ 배가 너무 고픈데, 제사 언제 끝나요?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ㅠㅠ”


아... 배가 고파서였구나..!� 대답이 끝나자마자 도현이는 스님께 허락을 맡고 차례상에 올렸던 약과를 내려 먹고 있었다.


지난 설 명절 차례 때, 영가를 위해 경전을 독송할 때였다. 도현이도 스님의 독송 소리에 맞춰서 경전을 곧잘 따라 읽더랬다. 혹시나 흐름을 놓칠까 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따라 읽는 모습에 사뭇 진지함도 느껴졌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스님 따라서 읽었지만, 읽다 보니 흥미가 생겨서 재미있게 읽었다고. 그러면서 기억에 남은 내용은 ‘삶’과 ‘죽음’이었다나, 뭐라나.^^


도현이의 동생이자 이제 첫 돌이 지난 리나도 나름 관세음보살님과 인연이 있다. 리나가 태어나기 3주 전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만삭일 때 코로나19에 감염이 된 것이다. 1주일 동안 언니는 병원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었다. 산모든 태아든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나. 온 가족이 걱정이었다.


그때 언니에게 스님 핑계를 대며 주문을 하나 했었다. 입원 기간, 매일 자애경을 한 번씩 읽고, 관세음보살님을 108번 외우라고. 기도라는 건 해본 적이 없는 언니였지만 ‘스님이 시킨 일’이라는 말에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매일 병실에서 자애경을 읽고, 관세음보살을 외웠단다. 그리고 리나가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난 그날, 제왕절개를 위해 수술대에 누웠을 때 우리 언니는 자기도 모르게 아주 간절히 관세음보살님을 찾고 있었더라고.


아직 말도 못 하는 리나지만, 우리의 인사는 관세음보살로 통한다. 영상통화를 할 때면 옆에서 우리 언니가 늘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며 인사를 시키기 때문이다. 그 소리에 맞춰 합장을 하고 배꼽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물론 리나의 배꼽 인사도 뒤에서 안고 있는 언니가 고개를 숙이도록 하면서 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관세음보살이 어떤 분인지, 왜 경전을 읽어야 하는지, 합장하고 삼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모, 엄마가 하니까 따라서 할 뿐이고, 그저 재미와 놀이 삼아 의미 없이 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순수함이 깃든 행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에 깊게 새겨지게 될 것이다. 시간이 아주아주 흘러 어른이 되었을 때, 고단하고 힘든 순간에 부딪혔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힘든 시기를 극복할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엄마인 언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가볍게 외우는 ‘나무관세음보살’ 한 마디겠지만,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되면 어느새 그 마음에 가족들의 행복과 보살핌을 염려하는 관세음보살님의 진짜 마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기도를 극진하게 올리는 사람이든 스치듯 그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이든, 기도 공덕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심코 외우고, 놀이 삼아 부르기 시작한 나무관세음보살 한 마디가 어떤 씨앗으로 발아할지는 아무로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12살이었을 때, 엄마도 아빠도 따뜻한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던 시기에 매일 밤마다 이불 속에 숨어 찾았던 그 이름도 관세음보살님이었다.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무던하게, 단단하게 보내려는 마음에는 그때 외웠던 관세음보살님의 힘이 새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도하는 공덕에는 높고 낮음도, 크고 작음도 매길 수 없음을 조카들을 보며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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