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다른세상인 것 처럼

어느 순간,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by 라온



요즘,
단톡방이 조용하다.


예전엔 일상이었고,

별일 없어도 인사처럼

툭툭 던지던 이야기들이
어느샌가

‘소중한 시간을 방해할까 봐’
머뭇거리게 되었다.


누군가는 출산휴가 중이고,
누군가는 이사한 신혼집 사진을 공유하며
셀프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침엔 늦잠을 잤고,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이었다는 말을
어디에 꺼내야 할지 몰라
그냥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한때는 우린 같은 언어를 썼다.
술 한 잔에 터져 나오는 푸념도,
입도 안 댄 치킨값을 나누던 조잘거림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땐 "너도 그렇지?" 하면
한참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문장을 말해도
의미가 어긋나는 것 같다.


“요즘 어때?”


“뭐, 애 키우는 게 전쟁이지.”


“너는?”


“그냥 똑같지, 뭐…”


말끝이 자꾸 흐려진다.
설명해봤자

전해지지 않을 감정이라는 걸,
서로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자라왔다.
그건 당연히

비난할 일도,

피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 다름을
자꾸 '내가 뒤처진 것'처럼

느낀다는 거다.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고독은
의외로 가장 오래 머문다.


어느순간부터
주말 저녁, 셋이 아닌 둘이 되고
그 둘도 아이를 재워야 하니
8시면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커피 잔을 쥐고,

멍하니 밖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은 내가 꽤나 좋아하는 시간이다.)


창밖에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
아이는 뛰고,

부모는 웃고,
그들만의 언어가 흐르는 저녁 풍경.


그 틈에 내가 서 있었다.


무엇도 나쁘지 않은데,
왠지 모르게
살짝 젖은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물론 나는 여전히

혼자인것에 불만은 없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좋아했고,
그들은 내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다만 우리는 이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긴 설명이 필요해졌고,
그게 가끔은
관계의 온도를 떨어뜨렸을 뿐이다.


‘혼자’라는 감정은
비어 있음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공감의 거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예전엔

‘나도 그래’ 한마디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그 차이가
마음에 고요한 균열을 남기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균열 사이에서
내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없지만
나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여전히 나만의 리듬을

지켜가기로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조금 더 자주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힘들지 않았어?”


누군가가 나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 주었으면 했던 그 말을.


사람들과의 온도 차에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자.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이니까.

다른 시간표를 가진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선게 아니라,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씩 멀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휴일에도,
여전히 혼자일 가능성이 크다.

익숙한 적막은 오히려 좋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때.

그 고요한 집 안에서
나는 어떤 온도로

나와 함께 있어주면 좋을까.






작가의 말✍️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 것은,

슬프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틈에서,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용기를

조금 더 확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디선가 혼자일 당신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기억해.

조용한 삶 속에서도

너는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