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감정을 덮지 않고, 꺼내어 바라보는 연습
몸이 회복되면 마음도 따라올 줄 알았다.
어지럼증이 줄어들고
조금씩 이런 나에게도 익숙 해 지면서
이제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렵부터 오히려 감정이 더 선명해졌다.
억울했고.
분했고.
서러웠고.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나는 날이 많아졌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우연히 스친 기억은,
나를 과거 속 어딘가에 묶어 놓는 듯 했다.
참았던 게 아니라,
모른척 했던 감정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힘들어하면 안 되지.”
“다 지나갈 거야.”
“어떻게든 버텨. 버텨야 돼.”
그런 말들로,
마음을 눌러놓는 데에만 감정을 썼다.
그렇게 감정을 외면한 채 살았던 나에게
회복은 ‘괜찮은 상태로 돌아가는 일’처럼 보였다.
진짜 치유는
'괜찮은 척'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걸
너무 늦게 깨달았던거다.
나의 우울증은 그랬다.
속으로는 대성통곡을 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절대로 눈물따위 흐르지 않는.
그러니 이토록
쌓여버린 감정들이 폭발하듯
줄줄줄 세어 나오는건 어쩌면,
내가 그 꽉 막힌 감옥에서
드디어 탈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지 않을까.
오히려,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는 순간에
비로소 내 시간은 움직였다.
감정이 올라오는 걸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왜 우는지 몰라도 괜찮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틀린 게 아니다.’
‘슬퍼도, 멈춰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씩,
묵은 감정들을 꺼내어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긍정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았다.
이 상황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회복은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완전히 괜찮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복잡하고,
가끔은 이유 없이 울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내가,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일거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괜찮아지기 전에,
먼저 충분히 슬퍼져도 괜찮다.
어떤 감정이든 쏟아내도 괜찮다.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했을 때부터
나도 나를 살리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