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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비가 오면 난 나가고 싶어

연일 비가 온다. 여름 장마 전에 비가 많이 올 때는 장마가 아니라 하더니 막상 장마라고 하면서 별로 비가 안 왔다. 지금은 또 가을장마란다. 


비 오는 날 용수골 양귀비 축제장


황토 미장을 하는 집을 짓는 회사에 다닐 때는 날씨에 참 민감했다. 흙집을 지으려면 적어도 골격을 세우는 시기 5일 정도 최소 3일은 비가 안 와야 손해가 없다. 매일 일기예보를 보며 스케줄 조정을 했다.  크레인과 작업 인원을 맞춰놓고 데마가 나면  최소 100만 원에서 500만 원가량 손해를 본다. (건축용어 대부분이 일본어이다 데마치(て-まち): 일거리가 없어서 두 손 놓고 기다림, 나중에 건축용어에 대해 글을 한편 써도 좋을 듯하다. ) 비가 자주 오는 장마 때는 공사를 맞춰놓은 하루 이틀 전에 날짜를 조정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럼 모두 다 똥줄이 탄다. 건축주도, 일하는 소장도, 나도 하루 이틀 공기가 미뤄지면 뒤에 공정들도 미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하늘에서 못하게 하는데. 

시댁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어르신들은 비가 많이 오면 작물이 녹아질까 걱정, 너무 안 오면 말라죽을까 걱정을 하셨다. 지금은 그래도 비가 안 오면 스프링클러를 활용해 물을 주지만 그런 시설이 없을 때는 가뭄은 정말 큰 걱정이었다. 태풍도 무섭지만 가뭄도 정말 무섭다. 


비오는 날 딸과 멍뭉이와 외출 준비


그러거나 말거나 난 비 오는 날이 좋았다. 겉으로는 비 오면 어떻게 해 하면서 속으로는 좋다. 어린 시절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 오는 날이면 난 자꾸 나가고 싶어 진다. 중학교 시절 비가 오면 한강 고수부지로 나갔다. 우산을 쓰고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고인 물에도 텀벙텀벙 들어간다. 어떤 날은 우산을 접어 슬리퍼를 그 안에 두고 맨발로 걸었다. 비를 맞으면 시원하고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몸에서 땀이 나 뜨거워진 몸과 차가운 빗물이 만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기도 한다. 그렇게 비를 맞고 집에 가려할 때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슬며시 걱정이 된다. 집에 도착 후  눈치를 쓱 보고 엄마 없는 틈에 욕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간다. 

지금은 막내딸과 종종 동네 하천 둔치를 간다. 대신 감기 들까 무서워 생으로 비를 맞히지는 못하고  천 원짜리 우비를 입힌다. 그러고 징검다리를 걷기도 하고 내가 어릴 적 했던 것처럼 물웅덩이를 첨벙거리기도 한다. 간혹 장마 때 하천 수위가 높아져 인도와 하천의 경계를 넘나들 때는 엄청 큰 물소리에 무섭기도 하고 아슬아슬하니 스릴도 있다. 


비오는 날 아슬아슬한 하천과 신난 막내딸


비 오는 날은 나에게는 낭만이다.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고. 일기예보를 보고 시간이 나는 퇴근 후 저녁이면 노천카페에 가서 비를 기다린다.  베란다 내가 앉아 글을 쓰는 자리에 그냥 우수받이로 흘러 내려가는 빗소리조차 정겹다.  비가 오면 세상이 촉촉해진다. 소음도 빗소리에 묻혀 빗소리만 들린다. 괜스레 차분해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올해는 고만 와도 될 듯하다. 이대로 계속 오면 가을 작물들이 다 망가질 것이다. 


이제 수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데 가을비는 고만 와도 된다. 그리고 올해는 일하기 좋은 봄, 가을로 비가 많이 와서 여름에 공사를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일을 못한 날도 많았을 것이다. 한 겨울 추위가 오기 전에 공사를 마쳐야 하니 모두 일에  쫓길 듯하다. 비야 나는 괜찮으니 고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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