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애
실내용 슬리퍼를 끌고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담임은 기관사에게 연신 머리를 수그렸다. 기관사는 한동안 말을 잃어버린 채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앞으로 고부라져 쓰러질 뻔 한 그의 부들거리는 몸을, 어깨를 담임이 두 손으로 힘껏 붙잡았다.
기관사는 앰뷸런스에 실렸고, 지애는 양 옆으로 팔짱을 끼는 구급대원을 거칠게 밀어내며 자기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학교로 바로 들어왔다.
담임은 지애를 교탁 옆으로 불러 세워 ‘우리나라 최초로 달리는 기차를 세운 아이’라고 ‘칭송’하며 아이들의 박수를 독려했다. 아이들은 양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쳐 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날 지애의 부모님이 박카스를 사들고 학교로 들어왔고, 지애는 한동안 넋이 나간 채 학교에 왔다. 영혼은 침대에 뉘어놓고 껍데기만 빠져나온 사람처럼 초점을 잃고 풀어져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지애는 곧 예전의 지애로 돌아왔다. 네가 기차 세운 애구나? 지나가는 교사가 물으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고 씩 웃고 지나가는 원래의 이지애로.
지애 부모님과 담임은 지애를 철로 틈새에서 빼낸 그 청년을 찾느라 애를 썼다. 그는 내가 담임을 부르러 간 사이에 사라졌다. 몸통이 크고, 짙은 녹색 이스트팩을 매고 특징 없는 반팔 회색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 그의 ‘몽타주’는 나의 기억에 의지하여 그려졌으나 현실감은 없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구석이 없었다. 단조로운 표정과 밋밋한, 어디서가 본 듯싶은 얼굴이라 방금 본 이인데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남 다르다는 것을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느라 짬짬이 골몰했다.
당시에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사람을 결국 찾지 못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우연히 영화 속에서 동굴 목소리를 가진 남자 배우를 보고 나서 불현듯 그 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언젠가 지애를 만나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주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는 우리에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특히 지애가 여전히 그를 찾고 싶을 거라고, 기억해내고 싶을 거라고 나는 단정했다.
“지애야, 우리 학교 공중전화 앞에 줄 섰을 때 너 벽에 낙서하다가 걸린 적 있잖아. 너한테 뭐라고 했던 남자 기억나지?”
지애는 내 말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고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커피를 흘려 넣었다.
“그 사람? 그 목욕탕 목소리?”
“목욕탕 목소리?”
“목욕탕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특이한 목소리 가진 사람. 기억나. 그 사람 왜?”
“아무래도 그 사람이 철길에서 너 구해준 사람 같아. 그런 목소리가 흔치 않잖아. 인상착의도 그 사람 같아.”
“사실 난 그때 기차밖에 기억이 안 나. 너무 커서 나를 압도했다는 거. 그 사람이 날 구했다고?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그때 그 사람 찾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는데 결국 못 찾았지. 이제와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남자 보통 용기가 아니야. 어떻게 그 순간 널 번쩍 안아서 구할 생각을 했을까? 자기가 죽을 각오를 하고 말이야.”
나는 지애 역시 그 사람을 목소리로 단박에 기억한다는 걸 알고 조금은 흥분해서 1995년도, 우리가 공유했던 그 시간을 조금 더 이어서 이야기하길 바랐다.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는 개신교 사학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지역 내에서 K학원으로 불렸다. 학교 부지 내에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있었다.
우리 학교 건물은 캠퍼스 맨 위쪽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중학교가 1층부터 3층을 쓰고, 대학의 일부 과가 4, 5층을 썼다. 한 건물을 여중생과 대학생이 나누어 썼던 셈이다.
학교 측에서 서로 오가는 출입구를 달리하여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놓았지만 그 방안이란 게 그리 치밀하진 않아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데가 존재했다.
이를테면 3층에서 4층으로 향하는 층계참. 그곳엔 건물에서 유일하게 공중전화 한 대가 놓여있었다. 1995년에는 삐삐를 쓰는 사람이 많아서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는 일이 일상이었다.
갓 성인이 된 대학생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돌봄’을 받는 우리들보다야 진지한 용건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할 일이 많았을 테지만 그들은 우리를 미워해서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선 우리를 보면 고개를 흔들고 눈을 뒤집으며 다시 4층으로 올라가곤 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는 동시에 남자 친구에게 486, 1004 같은 번호를 남기려고 숨도 참고 내달려온 열넷, 열다섯 여자아이들의 열기를 헤치고 그 뒤에 줄을 서는 일은 그들에게 수치였을지 모른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야 간신히 어른의 세계에 진입했다고 안심한 이들의 희망을 허무하게 꺾는 십 대 애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애를 썼던 시간을 그때의 우린 알지 못해서 그들을 쉽게 조롱하고 깔봤다.
그때는 벌겋게 구워진 목탄 같은 뜨거운 것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했다. 누군가에게 토해내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은 때라 누구라도 공동의 적을 만들지 않으면 속병이 날 지경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는 ‘남루하기 짝이 없는’ 캠퍼스 라이프를 향유하는 그들을 진심으로 딱하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다 듣도록 뒤에서 빈정거리며 낄낄거렸다.
지애는 타이트한 교복 재킷 주머니 사이에 컴퓨터사인펜을 꽂고 다니며 제 재능을 콘크리트벽에 낭비하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그 애는 주로 공중전화 앞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며 사인펜을 꺼냈다. 돼지를 그리고, K대생을 조롱하는 말들을 짧게 붙여 썼다. 니들보다 고졸이 ‘낳음’ 이런 식의 멍청한 모욕을. 소심한 나는 들킬세라 둘레둘레 망을 보면서도 걔의 ‘식상한’ 그림을 보고 킥킥댔다.
어느 토요일 오후 지애와 나는 CA가 끝나고 공중전화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숨차게 달렸다. 내가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동안 지애는 사인펜을 꺼냈다. 강아지였나, 돼지였나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옆자리에 모욕적인 말을 덧붙이며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찰나, 누군가 지애의 셔츠 뒤쪽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내가 수화기를 든 채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후드티셔츠를 입은 몸 둘레가 큰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잡았다.”
“씨. 뭐예요? 누구세요? “
“너지? 저 낙서? “
“아닌데요. 제가 하는 거 봤어요? 이거 놔요.”
“사는 게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아가야.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이제 10대 중반에 들어선 우리는 그가 차라리 욕을 하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게 덜 구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에게 인생을 운운하다니. 그의 대응은 우리에게 무력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뭐래?”
지애는 사인펜 뚜껑을 닫고 씩씩대며 나를 앞서 걸어 내려가버렸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위층으로 올라간 그 대학생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잘생겼다거나 못생겼다거나 인상적인 데가 없어서 방금 본 얼굴인데도 금세 희미해졌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만은 귀에 맴돌았다. 더 낮을 수는 없겠다 싶을 만큼 낮고 왕왕 울리는 목소리,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공기 중에 퍼져나가지 않고 입가에 머물렀다.
우리는 20년도 더 된 일을 꺼내놓고 서로의 기억 속에 빈 공간을 채워주고 채색하며 이야기를 잇고 또 이었다. 기억을 꺼내고 이야기를 잇는 것은 내가 주도하고 지애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그랬나? 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지애가 울었다. 맥락 없는 눈물에 나는 당황해서 내 머그 밑에 깔린 냅킨을 급히 빼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너 우는 거야?”
지애는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게 자신도 뜻밖이라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웃자 눈가 주름 새에 고여있던 눈물 몇 방울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그때 그 일 있고 나서 다음 해에 오빠가 하늘나라 갔거든. 나는 그게 다 내 탓 같아. 내가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나 태어나고 우리 엄마가 점을 보러 갔는데 점쟁이가 그랬대. 둘 중에 하나는 죽을 운명이라고. 결국 그렇게 된 거잖아. 그때 내가 죽을 운명이었는데. 괜히 다 원망스러워. 그 남자도 기관사 아저씨도. “
지애는 철로 사건이 일어난 그다음 해에 서울로 전학을 갔다. 나는 그 애의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전학을 간다는 것뿐 다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지애가 전학을 갈 때쯤엔 학년이 바뀌었고, 반도 갈려서 우리 사이도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서로 지나가며 얼굴을 보고 손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였고,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고, 그들에게 물들어 가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지애가 당연히 순탄하고 안온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 확신했던 난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가… 그렇게 됐구나. 그런 일이 있었다니 몰랐네.”
지애는 기관사가 달리는 기차를 가까스로 세운 것과 자기를 철로 틈에서 빼내준 사람에 대한 기억을 오빠의 죽음과 연결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설계해 놓은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닫고 지애의 어깨를 감쌌다.
그때 너는 운이 좋았을 뿐이고, 너를 구해준 그 사람은 용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고, 기관사도 선량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오빠의 못다 한 삶은 쓰라리지만, 그 일을 하나로 맺어서 생각하지 말라고. 이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지애를 안아주었다. 지애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다가 눈물이 멎자 시원스럽게 웃었다.
열다섯 살 이지애처럼.
*작가의 말: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지요. 대혼돈에 빠진 나라의 위기 앞에서 이런 나이브한 글을 쓰는 게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입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써야 하고, 약속은 행동이므로 일정대로 글을 올립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투쟁하여 얻어낸 부모와 스승을 통해 세상을 배운 사람입니다. 결코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무임승차하지 않는 민주주의 시민이 되도록 저의 자리에서 노력할 것입니다. 추운 겨울 모두 건강하시고, 안온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