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06년 (3)

헤어질 결심

by ondo

‘본인은 금 일백만 원을 치료비와 위로금으로 수령한 후 상기인에게 어떠한 추가적인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사단이 벌어진 다음날, 동기는 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었다.


그는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뺨에 번진 보랏빛 멍자국이 모자 그늘 밑에서 더 짙어 보였다.

남자친구는 빈 강의실 의자에 앉아 성실한 태도로 각서를 받아쓰는 동기를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때린 넌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맞은 넌 왜 밤조림처럼 쪼그라들었니?’ 난 속으로 물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돈 백만 원이 사람을 바짝 조려버릴 수도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폭행과 각서 그리고 백만 원의 위로금과 맞바꾼 합의의 시간은 보통 스무 살의 시간이 아니니까.


나는 어떠한 물리적 폭력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빠듯한 살림살이나 고부간 갈등으로 식구끼리 가벼운 모욕을 더러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서로 간의 살갗이나 뼈를 힘으로 누르거나 제압당한 일은 없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동기의 각서를 확인한 뒤 가방에서 도톰한 흰 봉투를 꺼내 책상에 던지듯 놓고 나가버리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옅은 혐오감을 느꼈다.


그와 사귀는 시간 내내 난 이별을 염두에 두었다. 그에게 설레거나 연애의 감정 그 자체에 빠져들었던 시간도 있었으나 어쨌든 우리 인연의 맺음은 결국 이별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그와 시한부 연애를 했다.


나는 그가 내게 충실하지 않은 순간이 오길 바랐다. 학교에는 매년 산뜻한 아이들이 들어왔고, 캠퍼스 안엔 여자가 반이니, 네게 미안하게 됐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주군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약한 기사처럼 나 외에는 누구도 눈에 들이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내게만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 그 이유만으로 난 이별 통보를 거두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나를 힘껏 사랑해 주는 그를 배신할 수 없었다. 우리 관계에는 나도 이해 못 할 ‘도리‘가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하면 행인에게 시비를 걸거나 욕을 했고, 바닥에 나뒹구는 깡통을 찼다. 기분이 나쁘거나 우환이 있어서가 아니라 술버릇이었다.


고작 스물몇의 나이에 거창한 이별의 명분이 뭐가 필요할까. 그 나이 때 이별의 사유는 시시하거나 사사로워도 된다. 하지만 그때의 난 순수한 마음과 말의 무게, 결정의 책임 같은 게 덩이져 있었다. 내게만 착실한 사람을 등지고 배신자가 될 용기가 없었다.


난 그와 결혼하는 꿈을 종종 꿨는데 꿈에서 깨어나면 양볼에 눈물이 말라붙어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와 계속 만났다. 그를 납득시킬 만한 이별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와 여러 해를 만나는 동안 그는 군입대를 했고, 나는 유학을 갔다. 굵직굵직한 인생의 변곡점에서도 그는 내게 전혀 소원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나는 엄마보다 그에게 더 많은 물건들을 국제우편으로 받았다. 그는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신라면, 장조림 같은 그리운 고향의 맛을 한국에서 부쳐줬다. 독일의 날씨예보를 확인하고 전기장판이나 목도리, 장갑 같은 것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날은 보통날이 아니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남자친구는 공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했을 때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방송사 장학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며, 현장에 와서 내게 응원을 해달라고 했다.

난 카메라 뒤편에서 분주히 오가는 스태프들 사이에 서서, 녹화를 끊어가는 순간순간 그에게 손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세우며 그의 팀을 응원했다.


그와 그의 친구는 초반에 목에 힘을 주며 호기롭게 퀴즈를 풀고 점수를 얻었다. 선두에 나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버저 타이밍을 놓치거나 오답이 늘어나면서 점차 다른 세 팀과 점수 격차가 벌어졌다. 아나운서가 ‘아, 아닙니다.’라고 할 때 그의 친구는 머쓱하게 웃으며 제 뒷머리를 쓰다듬었고, 내 남자친구는 그런 그를 경멸하듯 노려봤다.


그의 구겨진 기분이 태도가 되자 여자 진행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잠시만 쉬었다 갈게요.”라며 손을 들어 연출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내 남자친구를 쏘아보고는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기분은 내 탓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앞에서 다친 자존심을 드러내 보였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평소에도 내게 당당한 남자친구가 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나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가 자신에게 요구한 당당함은 적어도 나를 관통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날 그는 평소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삼겹살집에서 반주를 마시고, 치킨집을 거쳐 호프집에서 나올 때 그의 몸은 이미 무너져있었다. 그의 친구가 그를 껴안듯이 부축해 택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안해. 나도 여자친구 데려다줘야 해서." 그의 친구는 택시 뒷좌석에 널브러진 그를 보며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밤 11시였다. 그를 데려다주고 막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실린 택시에 함께 올랐다.

“기사님, 대방동 ㅇㅇㅇ아파트로 가주세요.” 나는 택시기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머리칼이 반백이 다 된 택시기사는‘하필이면’ 친절한 사람이었다. 다정한 말과 주제넘은 참견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나는 그가 깨어날까 봐 불안해서 기사의 말에 차근차근 응했다.


“어? 왜 이쪽으로 가요? 아저씨, 돌아가는 거 아니에요? “

남자친구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충혈된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택시 기사에게 웅얼거렸다.


“손님,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가는 겁니다.”


택시기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운전석 헤드레스트 뒤쪽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얼마나 더 받아 처먹으려고 돌아가냐고! 어? 똑바로 가라고. 누굴 호구로 아나.”


나는 그의 주먹 쥔 손을 양손 안에 넣고 꽉 붙들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는 택시기사에게 연신 사과했다. 내가 보이든 말든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욕을 하고, 창문을 주먹으로 치고, 왜 돌아가냐며 소리를 질렀다.

기사는 놀라운 인내심으로 아들뻘의 취객에게 모욕을 받아내며 목적지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아파트 정문이 보이자 기사는 갓길에 차를 세웠고, 뒷좌석 문을 열어 남자친구의 멱살을 잡고 그를 끌어내렸다.


“어린놈의 새끼가. 너 몇 살이야, 인마! 이리 와, 경찰서로 가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