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기회
그는 나의 입학 동기였다. 신입생 모꼬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처음 그 아이를 보았다. 선배 중 하나가 "신입 중에 노래할 사람?"하고 소리치자 그 애는 맨 뒷자리에서 거드름을 빼 듯 찬찬한 걸음으로 걸어 나와 선배에게 건네받은 마이크를 야무지게 잡고 혜은이의 <감수광>을 불렀다. 그는 제주도 출신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박수를 유도하면서,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면서,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의 고향, 제주도란 땅과 거기 사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때까지 제주도를 가본 적이 없었고, 제주도에 사는 사람도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수도권 외곽에 살던 내게 제주 사람은 외국인에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그에게 건넨 첫마디가 “제주도 사람도 아파트 살아?”였다. 그는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마 너네 집보다 우리 집이 더 노른자땅일 거라.”라고 말했다. 그는 첫눈에 봐도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삐죽하게 큰 키와 노르스름한 피부색, 빗자루를 씌워놓은 허수아비처럼 두피에 착 붙은 머리카락. 그가 정성껏 다림질된 듯이 올곧은 직모를 찰랑이며 버스에 올라탈 때 동기와 선배 몇몇이 코를 킁킁대며 웃었다.
“쟤 어지간히 악성 곱슬인가 보다. 대체 매직을 몇 번이나 한 거야."
그날은 3월 14일이었다. 전공과목 수강을 마치고 강의실에서 나오는데 그가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저녁때 시간 돼?”
나는 그 아이 얼굴에서 ‘우리 사이의 밥'의 의미를 찾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으로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가족에게 밥 먹자고 말하듯이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심드렁한 얼굴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오늘 약속 있는데.”
“약속 있다고? 취소하면 안 돼? 취소해.”
나는 OT를 다녀온 후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고, 특별한 친분이나 유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의 저녁 제안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취소라니. 선약인데.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
“됐다.”
됐다. 하고 그는 내게 몸을 돌려 앞서 걸어가더니 흡연구역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하필 오늘은 화이트데이이고, 따로 둘이 저녁을 먹자고 하고, 만나자는 용건도 밝히지 않는 게 혹시? 하는 마음이 들어 심란했지만 한동안 강의실 외에는 그 애와 단독으로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때의 일은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잊혔다.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고등학교 동창과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제주도도 처음이거니와 하늘을 날아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는 점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캠퍼스 안을 종종걸음으로 오가며 친구와 선배들에게 제주에서 갈만한 곳, 꼭 먹어야 하는 것들을 묻고 다녔다. 하도 수선을 떨고 다니는 바람에 내 여행 계획은 그 애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자기가 제주 사람인데 왜 쓸데없이 육지애들한테 묻고 다니냐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는 검지로 내 이마를 살짝 밀었다.
그는 제주 공항 인근에서 민박업을 하는 자기 숙모에게 연락하여 객실을 잡아주었고, 숙박 비용도 반값만 치르도록 나서서 중간 역할을 했다. 그는 내게 많은 말을 묻지 않았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언제나.
그의 호의에는 값이 있을 것 같았고,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값을 치러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덕분에 숙박업소를 찾느라 애를 쓰지 않아도 되고, 숙박비도 예산보다 절약할 수 있었으니. 무엇보다 함께 여행 갈 친구가 기뻐하니 나도 좋았다.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는 날 김포공항에서 그에게 문자를 받았다.
‘나 어제 제주도 집에 내려왔다. 방학 때 계속 집에 있을 거라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라.'
나는 그에게 고맙지만 여행 일정이 빽빽해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답장하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미리 출력해 간 여행 일정표를 들고 제주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친구는 운전면허가 있었지만 딴 지 몇 개월 안 됐을 때라 차를 렌트할 수 없었다. 제주의 땅은 생각보다 컸다. 동부에서 서부, 북부에서 남부를 버스로 오가기에 2박 3일은 짧은 일정이었다. 우리는 아침에 오설록 티 뮤지엄에 갔다가 점심은 성산일출봉 인근에서 먹는 식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서귀포의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고, 중간 지점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장장 3시간에 걸쳐 목적지에 다다르자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어 있었다. 점심시간을 놓친 친구는 짜증 난 얼굴로 그에게 연락해 보라고 내게 종용했다.
친구는 내가 가진 그에 대한 희미한 부채 의식에 대해 전혀 몰랐다.
“걔 제주도에 있다며? 전화해서 물어보기라도 해 봐. 이렇게 다니다가는 밥도 버스 안에서 먹을 판이잖아.”
내가 핸드폰의 작은 창을 들여다보며 문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자 친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나도 허기진 터라 친구의 한숨과 칭얼거림을 더는 감내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난데 너 집이야?”
“바쁠 거라더니 연락했네."
나는 그의 응답에 마음이 상했다. 그의 큰 계획에 결국 걸려든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조금 거만했다.
그는 우리가 있는 곳에 흰색 BMW를 타고 왔다. 정확히는 BMW 차주인 친구에게 운전을 시켜 성산으로 왔다.
그는 제주에서 명문이라 불리는 고등학교의 전교회장 출신이었다. 그는 아직도 회장인 듯 친구를 아랫사람 대하듯 부렸고, 친구는 그와의 상하관계가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고 편하게 그의 주문에 따라 움직였다. 난 그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고집스러운 입매, 여유 있는 행동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는 내게 호감과 부담, 좋고 싫은 감정의 어딘가 불분명한 경계에 서있었다. 그와 친구는 우리를 차에 태워 주로 도민이 드나들지만 관광객 입맛에도 잘 맞을 만한 식당에 데리고 다녔다. 우리는 원주민에게 익숙한 길, 효율적인 동선에 따라 움직였다. 내 친구는 제주 청년들의 ‘가이드’에 만족스러운지 여행 내내 작은 미소를 입에 머금고 다녔다. 우린 그 덕분에 길을 잘못 들어서거나 메뉴 선정에 실패하거나 바가지를 쓰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부드럽고 침착하게 여행을 마쳤다.
제주를 떠나는 날, 제주공항에서 그에게 문자를 받았다.
‘두 번째 고백이다. 우리 사귀자.’
그의 문자를 받고 놀란 마음은 없었다. 3월부터 그가 내게 호감이 있었고, 고백할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끄고 비행기를 탔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답장을 보냈다.
‘좋아.’
좋아.라는 쉬운 말이 우리의 관계를 7년이나 끌고 갈지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