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큰바람이 불고 비가 오더니 오늘은 날이 맑다.
아이는 뒷동산을 걸으며 봄을 제일 먼저 맞는 벌레들을 찾았다. 개미, 딱정벌레, 꽃무지.
참나무 아래 마른 낙엽 속으로 파고드는 보라금풍뎅이를 집어 종이컵에 넣었다가 쑥밭에서 놓아주었다.
아이가 여린 쑥을 뜯어 쑥튀김을 해 먹자고 한다. 냉이는 꽃이 피어 막상 봄이 오면 먹지 못 한단다.
깨끗한 잎이 달린 쑥을 손으로 우두둑 뜯어 코끝으로 가져가본다. 향긋하고 톡 쏘는 쑥향. 아기 손바닥 같은 어린 쑥에서 피어오르는 젖은 흙의 비린내와 알싸한 향에 눈이 감긴다. 키가 크고 이파리가 큰 쑥에선 향이 덜하다. 어린 쑥에서 더 짙은 향기가 나는 이유는 뭘까.
어른이 되면 밥벌이라든가 매일 해내야만 하는 일들에 매몰돼 개인의 반짝임이 사라지는 것처럼 자연도 그러한가.
사람은 모두 예술성을 타고난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사실 예술가라고. 미술가이자 작가이고 무용가, 배우라고. 우리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할 뿐.
작가 김영하가 말했다. 우리 안에는 모두 꼬마 예술가가 있다고.
아이를 키워보니 애가 하는 말은 종종 시가 되고 노랫말이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아이가 기쁨과 호기심에 출렁이는 팔다리는 춤이 되고, 끄적임은 취향이 좋은 작가의 그림이 된다.
지능이 어른에 못 미치고 사회성이 미숙한 아이라서 나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 놀란다. 배우지 않은 것들을 발현하는 것은 인간에게 타고난 예술성인가 싶어서 놀라고 기쁜 것이다.
싱그러운 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린 쑥과 같이 아이가 크기를 바란다. 현실을 살면서도 제 본연의, 꼬마 예술성을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고 소중히 가꾸기를 바란다.
쑥을 훑어낸 내 손바닥에도 초록이 잔뜩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