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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테라 화분에서 지렁이가!

by ondo

친정에 제법 키가 자란 몬스테라 화분을 놓아드렸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거실에 있던 아이 물건을 몇 봉지씩 버리고, 있던 가구를 빼거나 재배치하니 벽면이 휑한 느낌이 들어서 엄마에게 초록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주가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실내에 화분 놓는 일을 전혀 그려보지 못했던 엄마는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거실에 화분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고 답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서야 거실용 키 큰 화분을, 크림색 나비주름 커튼을, 창가용 바 테이블을 찾아본다.


일곱은 어느새 그런 나이인가 보다 싶어서 아이의 뒷머리에 오랜 시간 시선을 두었다. 뭉근히 데워진 찻물 같은 온도의 마음이 내 몸속을 훑고 지나갔다.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넘버 원이라고 홍보하는 어느 농원에서 거금 7만 8천 원을 주고 화분 배달을 시켰다. 화분에 그런 돈을 쓰는 건 처음이라 몇 번을 망설였지만 퇴근 후 거실에 놓인 몬스테라를 보고 마음이 열렸다.


기이한 꼬마 괴물 발가락 같이 갈라진 잎들에서 반짝반짝 광이 나고, 전체적인 수형도 밸런스가 잘 잡힌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첫인상이 식집사의 손을 예민하게 타지 않는 무던한 타입인 것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놓였달까.


나는 평소에도 식물이 보내는 신호를 오해하거나 섣불리 판단해서 수장시켜 죽이거나 햇빛에 태워 죽이거나 그늘에서 말려 죽인 전적이 있는 우발적 살목자(?)다!


신혼 땐 선인장조차 우리 집에서 살아나가지 못했다.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환경도 거뜬히 견디는 식물이 왜 우리 집에선 생을 다하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 집엔 무려 인간도 사는데.


식물에 무심하거나 전혀 애정이 없는 부류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나는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 마음을 쓴다.


나의 잘못은 식물의 신호를 오해하는 데 있다.

식물은 내 마음을 헤아릴 리 없으니 그저 잔악무도한 적일 뿐이겠지만.


‘아! 물 준 지 3일은 넘었다. 목마르지. 물 줄게,(‘아니야. 나 목마르지 않아. 물 좀 그만 줘.’)


‘아! 너무 그늘에 있네. 춥겠다. 볕 잘 드는 자리로 옮겨줄게.’ (’ 싫어. 너무 직사광선이라고. 뜨거워.’)




토요일 오후 아이와 집 뒷동산에서 쑥을 뜯고 있는데 엄마가 카톡으로 동영상을 하나 보냈다.


‘으으으 이상하게 생긴 지렁이. 징그러워. 못 내가겠어. 달(손주)이 와서 옮기라 해. ㅠㅠ‘


영상에는 화분 벽을 타고 기어 다니는 지렁이 두 마리가 보였다. 바퀴 달린 화분을 화장실로 끌고 와 물을 주던 엄마는 지렁이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아마 흙속에서 느긋하게 피부로 호흡하던 지렁이들이 난데없는 홍수로 숨이 막혀 바깥으로 탈출한 모양이었다.

‘두 마리야. 속에 버글버글할 거 같아.‘

아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할머니 집으로 긴급 출동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함미 보고 숟가락으로 들어서 화단으로 내보내주라고 해. 나 아기쑥 뜯어서 쑥튀김 먹고 싶어.‘라고 했다. 거절이었다.


엄마에게 아들 말을 전했더니 절대 못 한다고,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며 어쩌냐, 어쩌냐 하다가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지렁이들이 다시 제 집으로 기어 들어가기를 소원했던 엄마는 다시 문을 열자마자 마음이 꺾였다.


두 마리는 타일 벽에, 나머지 두 마리는 화장실 바닥에… 총 4마리가 꿈틀거리는 걸 목도한 것이다.


엄마는 긴 한숨 끝에 큰 결심을 했다. 샤워기 수압을 높여 지렁이들을 하수구 속으로 흘려보내기로.


나는 엄마의 결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걔네 하수구 벽 타고 다시 기어올라올걸?”


아니, 락스 청소를 해서 이젠 bye.

미안하지만 안녕이야, 안녕.


지렁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난데없는 물난리에 제 살길 찾아 나온 애들에게 락스라니.


나는 이 생명의 연대 책임을 질 만한 대상을 찾았다.

농원 사장님에게 연락을 해서 보내주신 화분에서 지렁이가 무려 다섯 마리(한 마리는 나중에 타일에 말라붙은 채로 발견)가 나왔는데 원래 이런 경우가 많은 건지, 키우는 분이 물 주기 겁내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따지듯 물었다.


사장님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월요일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속으로 얼굴의 반쪽만 웃는 듯한 반응이랄까. 나는 내심 쪼그라들어서 ‘지렁이는 흙에 좋은 건데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나? 진상인가?‘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다른 화분으로 바꿔준다고 한들 거기서도 지렁이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다섯 마리나 나왔으니 이제 더 이상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마음에 위안이 될지도.


일주일 뒤.

나는 출근 시간에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 어린이집 가방을 든 채 허둥지둥 나가려다 몬스테라의 신호를 받았다.


나를 창가에 놓아줘. 볕을 쐬고 싶어.


지금 나가야 늦지 않는데.

이 생명의 신호를 무시할 순 없었다.


나는 빈 손이 없어서 화분 아래 바퀴 달린 받침을 발로 슬쩍슬쩍 밀었다. 아아- 카펫을 살짝이라도 걷어냈어야 했다. 화분은 카펫 턱을 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쾅-화분의 흙이며 얕게 뿌리내린 줄기가 마룻바닥에 쏟아졌다.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 일곱 살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일곱 살은 지렁이를 락스로 처리하지도, 화분을 고꾸라뜨려 위협하지도 않으니.

나도 일곱 살 아이처럼 몬스테라에게 무해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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