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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콩을 심었으니 콩이 나지

by ondo

아들은 경계심이 많다.

낯선 사람은 물론 여러 번 만난 이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가 조금 더 스스럼없었으면 좋겠고, 모험심도 있고, 활력이 높은 수다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는 제 안에 떠다니는 구름 같은 말들을 좇으며 속엣말을 더 많이 하는 유형이다.

차분하고 생각이 많다.

분별없는 어린이답게 이리 쿵 저리 쿵 좌충우돌했으면 좋겠는데 신중한 걸음걸음마다 조선시대 어르신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타인에게 벽을 높게 쌓고 보초병처럼 눈을 지그시 뜨고 상대가 내게 무해한 사람인지 아닌지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또 두드려본다.


그런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드는 날이면, 내 마음속 구멍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다.

그 실망감은 사실 나를 향한 시위에 가깝다.

새로운 것을 의심하고 의지 박약하고 쉽게 지쳐 끝맺기를 어려워하는 나의 약점이 아이에겐 드리워지지 않길 바라는.

하지만 이런 마음은 어쩌면 콩 심은 데서 팥 나기를 바라는 헛된 바람과 같은 것이 아닌가.

나와 내 남편이 연약하고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인데 어떻게 우리 안에서 돈키호테 같은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겠는가.


아이의 여린 성정이 두드러질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묻는다.


내가 난생처음 수영장에 갔을 때, 내 키로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파란 물을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아빠 목을 껴안고 물속에 미끄러져 들어갔던가?

마을에서 마주치는 이웃 아주머니에게 먼저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던가?

귀엽다고 안아주는 엄마 친구의 품에 잠시라도 안겨있었던가?

유치원 재롱잔치 무대에서 율동을 끝까지 마친 후 울음을 꾹 참고 내려왔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자녀를 향한 부모의 강압과 통제가 가정교육으로 통했던 때니까 아마도 나의 솔직한 마음-불편하고 싫은-은 중요하지 않았을 테고, 무조건 부모 말에 따라야 착한 아이, 좋은 아이라는 자기 검열식의 지시가 일곱 살의 나에게도 있었을 것이므로 위와 같은 임무수행을 잘 해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일곱 살이 되기 전부터 할머니에게 너는 이제 다 컸다,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아이는 지금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술을 일그러뜨린다.

애완용 알비노 게코에 300만 원이라는 값이 붙는 게, 생명에 값을 매기는 게 엄마 아빠는 불편하다고 말하니,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는 아들이 어떻게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갈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시간은 헛 것이 아닌지

나는 날이 갈수록 아이의 무른 살과 뼈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아이의 의미 없는 발짓과 손짓에 닿는 뼈와 근육이 내 살갗에 큰 마찰로 전달될 때 경이롭다.

옥수수 알갱이 같은 이가 유치를 밀어내는 때가 되면 조금은 더 단단해질까?


해봤자 아이에게 불안만 전해주는 쓸모없는 걱정이 차고 넘쳐서 글을 쓴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도록 지켜봐 주고 도와주면 내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이제 그만 내 인생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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