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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사랑은 종이 접기라는 걸 너는 알까?

by ondo

종이접기를 잘하는 사람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잘 읽어내고, 2차원을 3차원으로 구현하는 감각도 뛰어난 것 같다.


그런 쪽으론 능력이 영 없는 나는 아이가 종이접기 책을 들이밀면 난감하다. 비행기나 배, 학 정도까지는 접을 수 있지만 16등분 접기부터 시작이 되는 양서류, 파충류로 넘어가면 2번 그림부터 막힌다. 굵고 하얀 점선대로 접어 포개어 넣으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고도 모르겠다.


영상을 찾아보지만 천천히 몇 번을 돌려봐도 따라갈 수가 없다. 부드럽고 쉽게 이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하얀 손의 주인이 괜히 얄밉다.


아이가 색종이를 이리저리 뒤집고 회전하는 내 손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빠에게 달려간다.

“아빠, 개구리 접어주면 안 돼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종이접기 책을 아래로 쓰윽 내려보더니 아이 눈을 보고 해 줄까 말까 간을 본다. 종이 접기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당연히 들이는 에너지나 시간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한번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 없기 때문에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무거운 머리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손바닥만 한 종이와 씨름해야 한다.


남편은 엉덩이를 들썩이는 아이의 애를 태우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한 잔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후에 한번 해볼까나 하는 식으로 무겁게 색종이를 집어든다.


남편의 손끝은 야무지다. 종이를 접으면 선이 새 칼날처럼 매끈하고 포개어진 면이 모자라거나 남지 않는다. 세모면 세모, 마름모면 마름모 마치 원래 그 모양이었던 것처럼 접은 태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세밀하게 접는다.


그가 종이를 접는 손을 보고 있으면 확대경을 쓰고 시계를 수리하는 수리공이 겹쳐 보인다.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나무 책상에 앉아 남의 시간을 찾아주느라 자신의 시간은 잃어버린 채 작은 시계창을 들여다보는 시계 수리공. 그는 결국 장인이 되었으리라, 나는 잠시 상상한다.


오늘 완성한 종이접기는 범블비독화살개구리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점의 얼룩이 있는 독이 있는 개구리인데, 독성 열매를 먹지 않아서 독이 없는 독화살개구리라고 아이가 설명했다.


아이는 그걸 손에 쥐고 다니다가 제가 만든 수조에 넣어 잠을 재우고, 나뭇잎 위에 올려놓고 사냥 본능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애착인형처럼 데리고 다니니 종이가 금세 닳고 해어진다.


종이 개구리의 탄생으로 어느새 우리 집은 정글이 되고, 아마존이 된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가시나무가 집의 벽을 뒤덮고 갈색 낙엽으로 뒤덮인 부연 강물이 마룻바닥을 채운다.


우리는 방울토마토가 들었던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잘라내어 독화살 개구리의 터전을 만들고, 두꺼운 종이의 가장자리를 접어서 개구리 전용 영화관의 터를 잡고, 남은 색종이 조각으로 팝콘통과 팝콘, 올챙이들을 만들었다.


남편은 미션을 완수하고 소파에 들어 누웠다. 한 김 식혀야 한다. 잠시라도 쉬어야 그의 활성화 시간대인 저녁때 아이와 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들 손을 잡고 다시 산책을 나간다. 아이는 개구리를 손에 쥐고 포충망을 들고 흥얼거리며 나를 따라나선다.


아이는 알까? 너를 향한 아빠의 사랑은 종이 접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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