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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깨구락지!

by ondo

아이가 목요일 아침에 거실에 비스듬히 앉아서 양말을 꿰어 신다 말고 돌연 바닥에 드러누웠다.


오늘 자기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양평 시골집에 가고 싶다고, 딱 오늘만 어린이집에 안 가면 안 되냐며 작은 시위를 했다.


내가 된다, 안 된다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아들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이미 울음이 배어있다.


얼마 전 텃밭에 심은 감자며 고추, 이런저런 채소 모종의 생육 상태를 살피러 내일 양평에 가야 한다는 할머니의 간밤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잠이 들었는지,

아들의 의지는 채 가시지 않은 잠기운에도 불구하고 제법 결연해 보였다.


일단 배를 내놓고 드러누웠다는 건 자기도 웬만해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만일 ‘no‘를 듣는다면,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가 감당하기 어려운 생떼거리가 시작될 거라는 선전포고다.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곱 살. 몇 달 후면 너는 학교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된다.

학교에 간다는 건 어른이 밥벌이를 하듯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무작정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그날의 너의 기분이라든가 컨디션이라든가 마음의 상태와는 아무 상관없이.


네가 미열이 있거나,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파도, 꼴 보기 싫은 친구가 있거나 선생님이 엄하거나 불편해도 가야 한다. 어린이집과 학교의 차이는 그런 것이지.


그러니 지금 너의 인생에서 ‘무조건‘이란 게 별 게 없을 때 누리는 것도 좋겠지. 너에게 걸린 규칙이라든가 의무, 책임이 아무래도 느슨할 때니까.


아기라서 뭐든 충분히 괜찮고, 서투르고 어설퍼도 그저 어여쁜 눈으로 보아주는 그 세상의 문이 조금씩 닫히고 있으니, 이런 귀여운 반칙은 기꺼이 눈 감아주고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여쭤 봐. 괜찮다고 하시면 엄마도 허락할게.”


아이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나 가느다란 팔다리를 출렁이며 할머니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늦은 오후, 사무실 구석에서 캡슐 커피를 내려 딴딴한 얼음을 수북이 넣고 유리잔을 휘휘 돌려가며 잠을 쫓고 있는데 카톡으로 사진이 전송됐다.


아들이 둥근 채집통에 잡아넣은 개구리를 들여다보는 사진이었다.

제 주먹만 한 개구리를 잡았다는 자신감과 ‘생물사냥꾼‘의 근거 있는 여유가 아이의 단단한 입매에서 느껴졌다.


“글쎄 얘가 빗물받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개구리를 봤나 봐. 그 무거운 맨홀을 들어 올리고 채집망으로 개구리를 채더니만 다시 뚜껑을 덮어놓는 거야. 애가 그 쇳덩이 열 생각을 어떻게 하니? 아니 닫아놓을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얘 일곱 살 맞니? 우리는 메뚜기나 잡겠거니 했지. 조용해서 뭐 하나 봤더니만. 세상에.“


퇴근해 현관문을 열고 신발도 벗기 전에 엄마가 부엌에서 달려 나와 개구리 채집 에피소드를 내게 늘어놓았다.

아들은 갖고 놀던 레고블록을 소파에 내려놓더니 내게 달려와 그건 그냥 개구리가 아니라 참개구리라며, 거미라든가 지네를 먹고살기 때문에 아마 그 안에, 어두운 데 웅크리고 먹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쭐한 아이의 볼이 불룩했다.


“엄마가 본 개구리 중에 제일 크다. 집에 데려오지 그랬어?”

어쩐지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더니, 자연을 사랑하는 아빠에게 야단맞을 것 같아서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놓아주고 왔단다.


나는 아들이 너무 천진해서 짠한 마음이 들어 뒷머리를 한참 쓸어내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아들의 까만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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