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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15. 2023

혼밥을 좋아합니다

프로 혼밥러의 점심

나는 사람들과 있을 때는 E성향이 강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I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사람들과 있을 때는 함께의 즐거움이 좋고,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나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편이다.

휴가가 주어지면 혼자 조용히 여행하는 걸 즐겨하기 때문에 혼밥도 문제가 없다. 혼자서 여행을 가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런데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하면 꼭 "혼자?" 하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왜요? 혼자 먹는 게 어때서요?" 나의 반문에 안타까운 시선이 돌아오지만 난 아랑곳 하지 않는다. 난 혼자 밥을 먹는 게 좋다. 내가 원하는 것과 네가 원하는 것 중간 어디쯤에서 메뉴를 맞출 필요도 없고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도 없이 공허한 이야기만 나누며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편하고 여유롭게 먹을 수 있어서 좋기만 하다.


혼밥레벨

레벨 1. 편의점에서 밥 먹기
레벨 2. 학생식당, 구내식당에서 밥 먹기
레벨 3.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 먹기
레벨 4. 분식집, 김밥헤븐에서 밥 먹기
레벨 5. 중국집, 냉면집등 일반음식점에서 먹기
레벨 6. 맛집에서 밥 먹기
레벨 7.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먹기
레벨 8. 고깃집, 횟집에서 먹기
레벨 9. 술집에서 술 혼자 먹기



1. 편의점에서 혼자 밥 먹기 - 서서 라면이랑 삼각김밥 먹는 거야 어렵지 않지. 쿨 하게 통과.

2. 관공서 구내식당에서도 혼밥을 하니 이것도 어려운 게 아니다.

3.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 - 세트 하나만 먹나, 세트에 프렌치프라이도 추가해서 먹는걸.

4. 김밥헤븐에서 혼밥-  이건 너무 쉬운 레벨 아닌가? 외출해서 갈 곳 없으면 자주 방문한다.

5. 중국집이나 계절 음식점- 자장면이 먹고 싶을 때 어렵지 않게 들어가서 1인분 주문하니 이것도 통과다.

6. 맛집에서 밥 먹기 - 이것도 메뉴가 다양하긴 한데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들어가 혼자 잘 먹고 나왔다.

7. 패밀리레스토랑 - 첫째 임신 중에 나온 배를 문지르며 먹고 싶은 메뉴 2인분 주문해서 먹고 포장해 나온 적이 있다.

8. 레벨 8은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다. 회는 원래 좋아하지 않고,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고깃집은 언젠가 도전해 보고자 한다.

9. 술집에서 술 혼자 마시기 -  남편이랑 대판 싸우고 어디 갈 데가 없어서 술집에 들어가 맥주 500cc 랑 치킨 주문해서 야무지게 먹고 나왔다.


요즘같이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에 혼밥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무도 혼자 먹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먹기 바쁘고, 나처럼 혼밥족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혼밥족이 많다.

전에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을 보며 혼밥을 했지만, 요즘에는 브런치스토리 글을 읽으며 혼밥을 즐긴다. 글을 읽다 보니 밥 먹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을 뿐이다.


사무실 점심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너무나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다. 같이 먹으러 가자는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저는 다이어트 중이라 샐러드를 먹으러 가야 해요." 같이 먹자는 사람들에게 샐러드를 먹으려 가야 한다고 하면 더는 함께 가자고 권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샐러드를 먹으러 따라올 일도 만무하다. 물론 매번 샐러드를 먹으러 가진 않는다. 혼밥을 위한 거짓말이다.

사람들과 헤어진 나는 그날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찾아 음식점으로 향한다. 그들 나름대로 의아할 것이다. 샐러드만 먹으러 가는 아이가 왜 살이 빠지지 않는 것인지. 왜 살이 더 오르고 있는 것인지.


라볶이에 김밥. 2인분 같지만 혼자 먹으면 1인분이 맞다. 라볶이와 김밥을 씹으며 브런치스토리 세계에 빠진다. 외국 여행글은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고, 매운 시집살이 이야기는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암환자의 투병기는 마음이 너무 아파 작가의 치유를 위해 잠시 기도한다. 어느 집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애 키우는 거 다 똑같지, 동지애도 느낀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면 브런치의 세계도 잠시 문을 닫아야 해서 아쉽기까지 하다.


다양한 혼밥메뉴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먹는 밥도 맛있지만, 조용히 나에게 쉼을 선사하는 혼밥의 매력도 포기할 수 없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점심은 정중히 사양한다. 내일 점심시간에는 무엇을 혼자 먹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나는 프로 혼밥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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