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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13. 2023

마라맛 시어머니는 아닙니다만

유부녀들의 모임에 시어머니의 마라맛 시집살이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브런치스토리에서도 시어머니 스토리는 빠지지 않는 글감이다.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시어머니들은 브런치스토리 속 현실 시어머니들에 비하면 신라면 수준이구나 느낄 수 있는 마라맛 스토리가 엄청 많다.


마라맛 까지는 아니더라도 결혼 14년 차 며느리에게 어찌 시어머니가 달콤하기만 했을까. 마라맛은 아니지만 전국 매운 시어머니 배틀에 나도 숟가락 나 얹어야겠다.





episode 1

신혼여행에 다녀오면 친정에 들러 하루를 자고 시댁에 가서 인사하는 것이 <시집가다>의 의미를 완성하는 줄 알고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친정으로 향했고 엄마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의 진수성찬으로 막내딸과 사위를 맞이했다. 시어머니께는 한국에 잘 도착했고 친정에서 하루 자고 내일 가겠노라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도 부모님께 인사 잘 드리고 오라 말씀하셨다.

 

"나는 몸이 좀 안 좋다. 뭐라도 사 먹고 집에 가서 쉬어라."

친정에서의 진수성찬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머님도 울 엄마처럼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서 신혼부부를 맞이하실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님은 저 한마디 하시고 우리를 현관으로 내밀으셨다. 순진한 새댁은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거 먹고 빨리 집에 가서 쉬자고 어머님댁을 나왔다.


"엄마~ 우리 집에 왔어요"

"왜 이렇게 일찍 갔어? 시댁에서 점심 안 먹었어?"

어머님이 몸이 안 좋다고 외식하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엄마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시댁에서 밥도 못 먹고 쫓겨난 년 ㅉㅉ"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니

"자기 집부터 와야지 왜 친정을 먼저 갔냐고 심통 나신 거야. 니 시어머니도 보통은 아니다 이뇬아."

우리 어머니 보통 아니신 거야? 나만 모르는 거야? 새댁은 별 생각이 없다.

그 이후로도 어머님은 내가 방문하면 애미 피곤하니 빨리 집에가서 쉬어라 하시고, 아들 손자들만 가면 점심에 저녁까지 먹여 보내신다.



episode 2

 아이 임신 후 3개월 동안 8kg이 빠졌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극심한 명치통증으로 오밤중에 응급실로 달려가기도 수차례. 물 한 목음 넘기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한 초기 임산부는 대학병원 응급실 의자에 앉아서 수액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너 이러는 거 아니야! 너 이러는 거 죄야!"

응급실 문이 벌컥 열리고 어떤 아주머니가 소리를 빽 지른다. 고개를 들 수 조차 없는 고통에 빠진 임산부가 고개를 겨우 들었는데... 오잉? 어머님이네? 뭐라고요? 죄라고요? 뭐가요? 아파서 수액 맞고 있는게요?

시어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온갖 질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 다녔지만 한마디 반문할 힘이 없었다.

"엄마 왜 이래, 오해야"

뒤이어 들어온 남편이 응급실에서 어머님을 끌고 나갔다. 죄? 오해? 뭐가? 힘없는 임산부는 며느리를 향한 어머님의 고함에 서러운 눈물이 폭발했다.

"새댁, 시어머니야? 저 여편네가 미쳤나"

옆에 계신 어느 아주머니가 내 등을 쓸어 주시며 위로해 주셨다. 엄마~~엄마 보고 싶어...


나중에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너무 힘들고 아파해서 자기 엄마 앞에서 하소연이랍시고 아이를 지키기 어려울 거 같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 아니 왜? 아픈 건 니가 아니잖아? 살이 8kg이 빠지도록 못 먹고 고통 속에 방바닥을 기어 다녀도 난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1도 안 했는데? 왜?

어머님은 그 일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으셨다.



episode 3

첫째 아들을 낳을 때 어머님은 분만실 복도에서 대기하고 계셨다. 출산 때 보고 싶은 건 엄마지 시어머니가 아니건만, 어머님이 오신다기에 보고 싶은 엄마도 오지 마시라 했다. 시어머니는 손주 얼굴을 빨리 보고 싶으셨나 보다.

무통도 없이 3.98kg의 아들을 자연분만 하느라 거의 넋이 나가 있는데 어머님은 2G 폰의 폴더를 여시며 들어오셨다. 내 눈에 시뻘건 고릴라 같이 생긴 아이가 이쁘다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시던 어머님이셨다.


4년 후 둘째 딸을 출산할 때 어머님은 병원에 오시겠다는 말이 없다. 덕분에 친정엄마가 분만실 밖에서 딸의 순산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고 병원에서 2박 3일을 지내고 산후조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째를 출산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축하한다는 시댁식구들의 전화 한 통이 없다.

"형님들은 그렇다 쳐도 어머님은 출산한 지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 축하한다, 고생했다 전화 한 통화 없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자기 힘들까 봐 쉬라고 엄마가 전화를 안 하신 거라는 말인지 막걸리인지를 씨부리고 남편은 첫째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마마마 친히 전화를 하셨나이까 미천한 저에게 전화를 다 주시다니 소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내가 무릎 꿇고 전화받아? 응? 어머님이 전화하시면 나 못 쉬고 벌 받는 거야? 그런 거야? 그래서 전화를 안 하시는 거야? 그럼 큰 아이 때는 왜 복도에서 대기하고 계셨는데? 아들 딸 차별이야?

괜한 남편만 잡는다.



episode 4

직모인 아들과 반곱슬인 며느리가 만나면 아이의 머리카락은 직모 아니면 곱슬이 된다.

그러나 어머님은 직모인 아들에게서는 오로지 직모인 손자만 나와야 정상인 것처럼 아이의 머리를 만지작 거리신다.

"우리 집에는 곱슬이 없는데, 얘는 왜 곱슬이니" 노래를 부르신다. 어머님의 며느리가 곱슬이라고 말씀드려도 노래를 그치지 않으신다.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엔.... 없는데" 시리즈는 수 없이 많다.

아이가 자다 깨서 울면서 나와도, 반찬투정을 해도, 피부가 간지러워도, 감기에 자주 거려도

"우리 집엔 없는데~"노래를 들어야 한다.

아이가 초등 5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아이의 머리를 휘휘 저으며 노래를 또 부르신다.

"우리 집에는 이런 곱슬머리가 없는데~"

"네, 어머님 좋은 건 다 애비 닮았고요, 못난 건 다 저 닮았어요. 그래서 그래요."

미소인 듯 썩소인 듯 알 수 없이 한마디 하는 며느리에게서 사이코패스의 기운을 느끼진 않으셨을까?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살았으면 결혼 14년 차에 이 정도 말은 하고 살아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 없이 살 수 있다. 말 못 하고 속상해하느니 할 말은 하고 어머님을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출처 pixabay



신라면 에피소드는 여럿 있지만 이쯤 해서 훈훈한 마무리를 지어보자면 우리 어머님은 나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으신다. episode 2의 무관심이 이제는 최고 장점이 되었다. 연락은 남편에게 하시고 가끔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으시면 애비 어디 있냐고 찾으신다.

남의 아픔이 나의 평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마라맛 시어님들의 시집살이 글들을 읽다 보면 어머님의 무관심이 나의 평안이구나 생각해 본다.


어머님은 남편의 엄마이자, 내 아이들의 할머니이다. 어머님께 어르신에 대한 공경과 예의를 다 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또한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시어머님에게도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 예의 있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어머님, 저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보아요~ "



ps. 명절에는 밥 얻어 먹고 옵니다. 데헷.


대문사진 - kbs2 사랑과 전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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