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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Dec 20. 2023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임신을 하고 태담을 하면서부터 아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사랑해"

"엄마가 우리 아기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실체도 보이지 않는 아기에게 그렇게 짝사랑을 고백하다 힘겨운 산고의 시간을 지나 시뻘건 고릴라 같은 아이를 품에 안고도 제일 먼저 한 말이 "아가야 사랑해"였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거의 매일, 아니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한다 노래를 불렀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하루도 빼먹을 수 없는 임무인 것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를 향한 사랑고백은 끝이 없었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노래처럼 듣던 아이는 말이 트임과 동시에 "사랑해"를 배워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입에서 "따당해요"라는 혀 짧은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아이의 평생 효도는 다섯 살 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온갖 재롱으로 육아의 피로를 싹 녹여준다.

그렇게 서로에게 누가 더 많이 사랑하나 내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경쟁하듯 말하던 "사랑해"라는 말도 아이가 커 갈수록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아직은 1학년인 둘째 딸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 "저도요"라는 답변이 오지만 5학년 아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 굵은 목소리로 "네"가 끝이다. "너는 엄마 안 사랑해?"라고 물어봐도 묵묵부답일 뿐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 고백은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가나보다.


그렇게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엄마도 아이도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해진다. 사춘기 아들에게 다섯 살 때처럼 사랑한다며 뽀뽀세례를 퍼부었다간 기겁을 하고 다시는 엄마랑 말도 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이가 커 갈수록 사랑은 하지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어색한 관계가 되어 간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 아빠에게 몇 살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까? 분명 아기 때는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나 또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사춘기가 되고부터 나와 부모님 역시 사랑한다는 말을 멈추게 되었을까? 결혼할 때조차 부모님과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친정을 갈 때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못하니 아이들이라도 많이 시켰다. 볼에 뽀뽀까지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나이를 먹어가며 부모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닫기 시작했다. 뽀뽀라도 해 드리라고 하면 싫어하는 눈치다. 나도 안 하는데 더 이상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다.


분명히 사랑하는 관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어색한 것일까?


어느 순간 친정에서 부모님을 뵐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엄마 아빠는 안 늙으실 줄 알았는데 이제는 영락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안녕히 계시라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인사만 하고 가다 갑자기 용기를 내어 엄마 아빠를 안아 드렸다. 그리고 볼에 뽀뽀도 하고 "사랑해요"라고 말해버렸다. 못할 행동을 한 것도,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모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 엄마 아빠도 막내딸 등을 두드리시며 잘 가라고만 하신다. 엄마, 아빠도 어색하셨나 보다.


그렇게 다 큰 부모와 자녀는 어느덧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부모님이 80을 향해 가신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불현듯 엄마 아빠가 갑자기 내 곁에 안 계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뵙고 어색하지만 용기 내서 사랑한다 말해야겠다 수 없이 다짐을 해 본다. 이제는 사랑한다고 말할 때 <용기>까지 필요해졌다.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귀엽게 이모티콘까지 붙여서 사랑한다 답장을 주셨고, 아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답장을 주셨다. 용기를 내서 카톡을 보냈는데 엄마 아빠도 답장을 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하셨던 건 아닐까?


사는 게 바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친정에 갈까 말까 한다. 식사를 같이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친정을 떠나올 시간이다. 한 번 두 번 엄마 아빠를 번갈아 안아드리고 "사랑해요"라고 말을 했더니 부모님도 서서히 내 등을 두드리시며 사랑한다고 답해 주신다.


어릴 때 주고받던 "사랑해"라는 말을 이제 다시 주고받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엄마 아빠와 다 큰 딸이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기에는 다시금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 용기를 내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 한 마디를 하니 내 마음이 가장 먼저 따뜻해진다. 여쭈어 보지는 않았지만 부모님 마음도 따뜻해지지 않았을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후회하기 전에 카톡으로, 전화로, 만나서 실컷 "사랑해요"라는 마음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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