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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호 Oct 14. 2015

우물이 무너지는 순간


논둑을 걷고 있었다.

이른 봄날의 시골이란 푸르고 아득하다.

바람은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다.


노인의 백발처럼 정연한 황금색 잔디길을 가다가 낡은 우물을 만났다. 우물이란 이상하다. 그 안을 들여다보기 두려운 것은 외로움에 직면하여 이야기할 상대가 오직 자신밖에 없음을 아는 그 순간과도 같다.


나는 우물 속에서 무엇이 나올까 두렵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나밖에 없다. 그래서 우물은 신비한 힘이 있다. 그것이 존재하는 만으로도 내게 깨달음을 준다. 두려운 것은 오직 나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토록 깊은 곳에 내내 찾아주기를 바랐던 내가 있다. 그토록 맑고 고요한 곳에도 내가 있다. 이토록 당연히 내가 담겨있다.


우물을 지나쳐 내쳐 길을 따라난 수로를 걷는다. 수로 양쪽의 담은 한 뼘밖에 되지 않는다. 창백한 뺨같은 하얀 운동화가 아슬아슬 수로를 걷는다. 갑자기 이 순수한 고적함을 깨는 놀라움이 있다. 죽은 얼룩 고양이의 시체가 수로에 낀 이끼와 함께 엉켜있는 것이다. 그 형체, 아니 그 보송보송한 털조차 약간의 물기가 있을 뿐 생생한 채로.


하얀 운동화는 가만히 멈추어서서 그것을 들여다본다. 갑자기 그것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도를 읊조리기도 한다. 시체 저편에 수면을 반짝이며 흐르는 햇살과 물살을 보기도한다.


그러나 부산한 것은 나뿐이다. 고양이는 이토록 담담하며 물살도 바람도 땅도 햇살도 이토록 다정하게 무관심하다.


그러나 나또한 놀라지 않았다. 에구머니. 가엾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고양이의 무엇은. 그것을 영혼이라고 할까, 진체라고 할까. 진짜 고양이는 여기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주인이 떠난 빈집이다. 종래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결국 서까래도 기둥도 주춧돌도 부서지고 말 집이다. 그러자 고적함과 평화는 깨지지 않은 채 고양이 시체 주변을 흐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산책의 평온은 전혀 깨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자연스럽다.  그저 때가 되어, 불가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인연이 다하여 자연히 흩어졌다.


오늘에서야 갑자기 그 장면을 떠올린다.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아름다웠다. 노랗게 빛나는 수면이. 그리고 마치 젖을 먹이기 위해 몸을 누인 듯이 누워있던 고양이의 시체가. 죽는 것. 나는 확고히 믿는 어떤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계속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앎처럼 믿는다. 오감으로 인지하는 생이란 마치 수면에 떨어진 세제 방울처럼 어지러히 엉키고 흩어질 뿐. 놓아졌다는 자체가 세제 방울이 물을 휘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부산한 무늬를 만들어내듯 찬연히 오감을 어지럽히는 삶이 된다.


그 고양이와 나는 뭐지?

나는 뭘까. 그렇다면 지금 나라는 진실한 존재는 내 몸에 마치 집에 들어앉은 주인처럼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내 몸에만 머무를까. 저 전등에 머무르면 안되나? 저 창문에, 저 거울에, 저 찻잔에, 저 책장에 머무르지 않고 하필이면 왜 내 몸이라는데 이렇게 꼭 붙어앉아 머무르나. 그것이 갑자기 이상하다. 왜 고집쟁이 늙은이처럼 혹은 장자(莊子)에서 말하듯 물이 홀짝 말라버린 못을 지독히 지키고 앉은 황새처럼 꼭 붙어 있는가?


집이 무너지는 것을 상상한다. 그것은 내 몸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디로 가나. 비 내리는 들판을 황야를 정처없이 쏘다니는 나를 상상한다. 황야에서 들판에서 살 수 있다면 거기서 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또 다른 집에 들어가겠지. 또 다른 집에 들어가지 않고도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것이 해탈인가. 광막한 우주마저 자신이 발을 디딘 그 한 점으로 여기는 자유가 니르바나인가.


나는 이 집을 떠나면 어떻게 저 황야에서 들판에서 사막에서 살아갈 것인가. 나는 그것을 생각한다. 고양이는 어디에 있는가. 집을 찾았는가 아니면 저 거칠고 아름다운 황야에 있는가. 혹은 나조차 없는가. 고양이도 없는가. 우리는 그저 따로이 길 떠났던 한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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