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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삶 Oct 12. 2022

대학생활 7년의 끝을 이제 써보려 해

7년의 담금질 끝에 한의사가 되다.

다음 중 내가 학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말한 문장은?


1) 빠른 졸업이 답이다

2) 점심 뭐 먹지

3) 집 가고 싶다

4) 이거 언제까지 해야 돼?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정답은 1번이다. 졸업은 무조건 빨리 할수록 이득이다.

하지만 난 휴학을 한 번 했지~

그래서 학생을 7년 동안 했지~


한의대를 나왔다. 한의예과 2년을 지나 한의학과 4년을 거쳐야 한다. 물론, 졸업하기 전에 국가고시를 보고 한의사 면허를 따야 비로소 한의사가 된다.


왜 휴학을 했냐고? 오해하지 마시라. 유급을 당한 건 아니고 일반 휴학이었다.


유급이란, 전공필수과목에서 낙제하거나 전체 평균학점이 2.0을 안 넘는 경우에 진급을 막는 제도다. 누가 유급을 당하냐고 물으실 수 있다. 놀랍게도 한의대는 유급이라는 제도를 활발히 이용하는 교수님들이 꽤 계신다. 우리 학번에 총 90여 명 있었는데 그중 첫 학기에 22명이나 유급을 당했다. 그것도 특정 과목에서 점수를 못 받아서 단체로 아래 학번으로 내려갔다.


난 예과 1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휴학을 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고민이 돼서였다. 학교 한 학기밖에 안 다녔는데 무슨 고민이 있겠냐마는. 그땐 진지했다. 학교를 6년이나 다녀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내 인생 방향도 흔들리고 있었고.


재수를 했다. 재수 시절, 난 내가 'xx대학교 경제학과 14학번'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암시, R=VD 그런 거였다. 그만큼 xx대 경제학과에 진심이었던 내가, 대학 졸업 후 행정고시나 로스쿨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문과생의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한의대에 가게 된 것이다.


타지에 있는 학교라 교내 기숙사를 일단 신청한 후에 전공을 고민했다. 부모님은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며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내 맘은 한의대로 기울어있었다. 사실 'xx대 경제학과 14학번'이 될 수 없었기에 차라리 새로운 길을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섣부른 결정은 후회를 부르는 법. 21살의 나는 다시 한번 고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타지에서 집까지 KTX 타고 다녀야 하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이 갑자기 부럽고, 한의학을 내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못했다.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돼?' 


아이러니하게도, 1년 쉬면서 오히려 한의사가 얼른 되고 싶었다. 1년 동안 서울에서 계속 놀다 보니 서울 라이프에 대한 갈망은 채워졌고. 내가 행정고시를 보겠다는 것, 로스쿨을 가겠다는 게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공무원/판 검변/한의사라는 선택지 중에서 확실하게 원하는 건 없었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 거지?


어차피 정답은 없다. 결국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나는 내 인생의 답을 써 내려가면 되지 않은가? 내가 잘하는걸 직업으로 삼아라, 아니다 좋아하는 걸 해라.. 주변의 조언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과 교감하는 걸 좋아하고, 남을 도와주며 얻는 성취감이 내 자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한의사가 나와 잘 맞을 거 같았고, 한번 확신이 드니 복학이 너무 기다려졌다.


한편으론 휴학한 게 후회도 됐다.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굳이 했어야 했을까?

아니 그냥 빨리 졸업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야!


복학 후, 어떤 한의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예과 2학년 때 내가 존경하는 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가슴 한편에서 울리고 있다.


한의사는 누가 먼저 깃발을 꽂으면 바로 그 분야 1인자가 됩니다. 한의사로서 성공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아직 한의학을 공부한 지 2년 차 밖에 안됐던 내가 봐도 한의학이 연구된 분야도 매우 적고, 연구된 기간도 짧아서 '여기가 바로 노다지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니. 그만큼 정돈이 안된 혼돈의 카오스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 여러 방면으로 기웃거렸다. 교내외로 정말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코딩도 해보고, 진로탐색 동아리에서 선배 한의사분들 인터뷰하러 다니고, 한의대생 대상으로 포럼도 만들고, 함께 정책 공부도 하고, 축제 기획도 했다... 중간엔 하버드 계절학기 수업도 들으러 미국도 다녀왔다. 학교에선 학생회/여학생회도 하고, 근골격계 학술동아리도 하고 과대표까지 했는데...


그래서 어떤 한의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나의 해답은? 사람을 넘어 사회를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


그전에 사람을 좀 더 잘 치료하고 싶어서 전문의 과정 4년을 더 밟기로 했다.


학생 7년을 겨우 끝냈더니 전문의 4년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졸업 #한의사 #진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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