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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삶 Oct 12. 2022

필사적으로 버텨라, 3월 첫째 주

역마살이 낀 자의 선택

"서울에서 오시는 거예요?"


졸업하고 오랜만에 SRT를 타보았다. 당연히 나의 첫 직장은 서울 집 근처일 거라 생각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울산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전라북도 익산에서 학교 다니며 7년, 여기 울산에서 앞으로 4년 보내게 된다면 무려 10년 넘게 집 떠나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내 역마살, 어마어마하다.

다행히 새로운 지역으로 옮기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좋았다. 서울 토박이였던 내가 익산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울에 남을 것인지, 울산으로 내려갈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에 이미 내 마음은 울산으로 기울었다. 또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구나.  


울산역에 도착해 리무진 버스를 타고 병원 앞에 도착했다. 면접 이후로 울산은 두 번째. 면접날은 낮이어서 차창 너머 태화강에 뜬 윤슬을 보며 갔는데 저녁의 울산은 캄캄했다. 버스 안에서 레지던트 선생님과 연락하면서 저녁 7시가 넘었지만 아직 인턴 선생님들 일이 덜 끝났다는 걸 알게 됐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이제 진짜 낯선 곳에서 4년을 일한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점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어둠을 나의 심장 박동 소리로 가득 매웠다.   


한방병원 인턴으로 일하다는 것

원래 인턴은 2월 구정 연휴 끝나고부터 일하기 시작하는데, 난 다른 동기들보다 2주 늦게 시작하게 되었다. 주변에 일찍 인턴으로 들어간 친구들은 벌써 죽을 맛이라며 연락도 하기 너무 힘들어했다. 친구들이 내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인턴 하지 말고 부원장 하라며, 어서 도망치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큰 조직에서 일하고 싶었던 난 일하면서 받게 될 스트레스보다는 앞으로 만날 인연들과 들어올 월급이 더 기대가 됐다. 어떤 동기, 선배들, 원장님들과 함께 일하게 될까? 면접 때 본 병원은 간접조명과 차분한 향으로 은은하고 깔끔한 인상을 내게 주었는데 이 건물에서 난 어디서 일하고 먹고 자게 되는 걸까? 당직실도 이런 분위기려나 살짝 기대를 했다.


인턴은 병원 당직실에서 일 년간 생활한다. 당직실은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비밀 공간에 있었다. 이곳은 사실 내가 면접날 갔던 병원 2층 진료실이 있던 곳의 뒤편으로, 쪽문을 열고 나가면 나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직실은 창문도 없고 팻말도 없어서 병원 사람들 중에서도 이 방이 당직실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 의국에 동기들과 레지던트 1년 차 선생님들이 일하는 중이라 얼른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짐을 간단히 풀고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7층 옥상의 의국 문을 열었다. 그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날 따스하게 맞아주면 너무 민망할 거 같았다. 사실 다들 일하는 중이라서 날 별로 안 반가워할 수도 있어. 그래, 큰 기대는 하지 말자.


문을 열자마자 방 안의 불빛은 빠져나가버렸다. 눈앞엔 벽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세 명이 있었다. 이 세명이 내 인턴 동기들이라는 직감이 왔다. 그 뒷줄에는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는 두 명이 먼지에 덮여있었다. 이 두 분이 내 윗년차 선생님들이겠군. 다들 꼼짝없이 앉아서 자신의 색이 바래지는 걸 모르는 채 작업 중이었다.

"아유 다들 바쁜가 보네요. 새로 온 인턴 선생님이에요. 인사해요." 오늘 나를 병원에서 맞아준 레지던트 선생님의 말씀에 겨우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RRR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분위기가 점점 침울해졌다. 정말 병원 일이 힘든가 보구나, 내일의 나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에 조금 두려운 마음으로 얼른 의국을 빠져나왔다. 의국 밖은 밝았다. 멀어져 가는 불빛을 뒤쫓으며 당직실로 향했다.


당직실에는 이 층 침대가 2개 있었고, 화장실, 간이 옷장, 그리고 침대 사이 빨랫대 그뿐이었다. 자연스레 문 앞 1층 침대가 내 자리가 되었다. 여자 네 명이 한 방에서 씻고 빨래 말리는데 창문도 없으니 먼지나 습기가 장난 아닐 거 같았다. 학교 기숙사도 2인실이었는데 직장 기숙사는 4인실이 되었다.

그날 밤, 동기들은 밤 11시 다 돼서야 당직실에 왔고, 서로 간단히 통성명을 했다. "선생님들한테 언니 얘기 많이 들었어요." 병원 동기들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는 채로 온 난 그제야 나머지 세 명보다 내가 나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궁금했지만 이미 피곤해 보이는 그들에게 되묻는 건 첫날부터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참았다. 다음에 한번 물어봐야지. 다짐하며 병원 첫날밤의 불은 꺼졌다.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5시 40분에 나지막이 울리는 모닝콜 소리에 하나둘 조용히 어둠을 개키고 동기들은 당직실을 나섰다. 세 명이 순서대로 화장실을 쓰는 동안 뜬 눈으로 조용히 그들의 움직임을 느꼈다.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직실 불도 켜지 않고 핸드폰 플래시를 사용해 준비를 마쳤다. 홀로 남겨져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 학교에서 실습할 때처럼 입고 가기로 했다. 블라우스, 슬랙스, 구두, 그리고 실습 가운. 멀리서 분주히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8시가 되었다.


의국에 9시까지 가기로 했지만 당직실에서 딱히 할 일도 없어서 8시 반에 올라갔다. 아침의 의국은 어젯밤보다는 밝았지만 여전히 음소거 상태였다. 흡사 스터디 카페 같았다. 사람들은 각자 모니터 앞에서 조용히 외로운 전쟁을 하는 중이었다. 가장 출입구 쪽 신발장 옆자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자리였다. 벽을 보고 나란히 앉아있는 동기들 옆자리 마지막 한 칸을 완성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지만 쉬지는 못한다

난 바로 실전으로 투입돼야 했기 때문에 2주 분량의 교육을 3일 안에 속성으로 배워야 했다. 환자가 입원을 했을 때 문진을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기본적인 이학적 검사들, 병원에서 쓰는 용어들, 그리고 입원, 경과기록지 쓰는 법을 빠른 속도로 익혀야만 했다. 어제 봤던 뒷줄의 윗년차 선생님 두 분이서 번갈아 내 교육을 맡으셨다. 곁눈질했을 때 다른 동기들은 이미 업무에 익숙해져 크게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날 저녁에는 병동 라운딩 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들의 상태를 저녁에 체크하고 그 내용을 정해진 시간 내로 윗년차 선생님께 검사를 맡으면 됐다.


뇌가 마비되는 거 같았다. 아침, 저녁으로 라운딩 한 후 브리핑지를 작성하고 윗년차 선생님들께 검사를 받은 후에 담당 원장님들 출근 전에 제출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담당과 환자가 입원을 하면 문진하고 입원 기록지, 경과기록지를 작성하고, 선생님께 검사를 맡으며 끝없는 수정을 거쳤다. 환자 – 간호사 – 인턴 – 레지던트 – 원장님으로 이뤄진 소통 구조에서 환자와 간호사가 있는 병동의 일들을 레지던트 선생님께 전달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입원을 한 명씩 받다가 매일 입원받는 환자 수를 늘리고 교통사고 환자뿐 아니라 까다로운 건강보험 환자까지 받게 됐다.


입원 기록지, 경과기록지를 작성할 때 정해진 양식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 첫날 교육받고 둘째 날부터 바로 적용해봤지만 실수가 너무 많았다. 입원받고 환자 상태를 윗년차 선생님한테 브리핑 후 작성했는데 선생님한테 깜빡하고 못 말했던 내용을 더 쓰거나 다른 표현을 쓰는 등 양식을 안 지켜서 틀렸다는 지적과 함께 종이가 돌아왔다. 스스로 본인의 실수를 찾아내야 했는데 끝까지 못 찾아서 헛다리를 짚다가 시간이 다 가면 보다 못한 선생님이 답을 주기도 했다. 내 실수들을 인지하는 순간 너무 쪽팔리고 바보 같아서 다시는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또 다른 기록지를 쓰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머릿속이 리셋되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빨리 끝내는 게 가능한 건가? 늘 환자 라운딩을 늦게 마치는 사람이었다. 아침, 저녁 브리핑지를 검사해주는 선생님이 내가 너무 느리다고 말씀하셨다. 왜 내 환자들은 유독 말이 많은 걸까? 아니면 내가 환자들이 말하는 걸 끊어내질 못하는 건가? 저녁 브리핑지 검사는 1주만 맡으면 됐는데 내가 너무 요령 없이 했기 때문인지 익숙해질 때까지 1주 더 하라고 하셨다. 자연히 퇴근은 늦어졌다. 보통 당직실에는 저녁 11-12시 사이에 내려가게 됐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가 쓴 경과기록지를 눈앞에서 던질 때가 바로 근무 5일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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