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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삶 Oct 21. 2022

엘리베이터에 갇힌 환자를 구하라

환자는 많지만 이제 마음은 여유롭다

2주차가 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정식으로 원장님 세 분을 3개월 동안 맡게 되었다. 담당하는 세 원장님의 입원환자의 총합이 제일 많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 뭐야.

지난주만 해도 자존감, 자신감이 바닥을 찍었던 사람인데 이렇게 벌써부터 많은 환자들을 제게 맡기셔도 되는 건지? 입원 환자 총 70여 명 중 28명이 내 담당인데~ 인턴은 지금 4명이라는 점 ㅎㅎ 


그래도 저번에 윗년차 선생님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 나니 그 후에 좀 더 자신감이 붙었다. 더 이상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문 기분이랄까? 눈치도 덜 보고, 예전의 적극적인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안정되니 일도 잘하고 달라진 나의 모습을 주변에서 느낄 정도였다. 눈치 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 그런 주저함은 없애고 적극적이고 밝게 생활하고 있는 중이었다. 


환자들 입원 잘 받아왔을 때, 내 담당 환자들과 라포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음을 느낄 때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역대급 스트레스를 받고 나니 오히려 날 더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살펴주는 건 나밖에 없다. 그래서 발전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기본틀도 뚝딱 만들고 뭘 더 해야 할지 찾아 나선 거 같다. 가장 늦게 일을 마치던 나였는데 점점 속도가 붙어서 퇴근시간이 빨라져 다른 동기들보다 일찍 퇴근할 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놀란 환자분에게 필요한 건

정서적 지지다. 

담당하는 원장님이 바뀌며 알고 보니 환자 수가 늘 많은 원장님 조합에 걸려서 초반부터 28명 환자를 담당하고 있었다(거의 전체의 1/3). 노티가 미친 듯이 많고 수가 많으니 자연히 더 아프고 의사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어 하는 환자분들 수도 많기에 직접 가서 환자를 확인하고 와야 해서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한 환자분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노티(연락)가 왔다. 원래도 폐소공포증 있는 환잔데 몸도 약하신 분이라 정말 놀랐을 거다.  특히 오늘 아침 라운딩 때에 이미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안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됐다. 조그만 소리에도 예민해서 잠도 평소에 못 주무시는 분이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받는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았다. 


보통 병동에서 환자분이 어딘가 불편하다는 콜이 오면 약 처방, 진통제 주사 오더, 아이스팩 티칭 등을 우선으로 하고 그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침 치료나 부항 치료를 시행한다. 치료행위를 시행하는 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혔다가 깜깜한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온 환자가 '매우 놀라서 울고 계시니 어서 와서 상태 좀 봐주시라'라고 연락이 왔을 때, 난 '뭘 해 드려야 하지?' 이런 생각과 함께 일단 머릿속이 하얘졌다. 울고 있는 환자한테 침 맞으실래요? 이러는 건 너무 사이코패스 같고... 어떻게 해야 놀란 환자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몰라서 환자분이 단 거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냉장고에 들어있던 빅파이랑 초코하임 좀 챙겨갔다. 그리고 우황청심원까지. 


607호는 다행히 환자분과 친한 언니들이 함께 생활하는 방이었다. 이미 침대에서 엉엉 울고 있는 환자분을 둘러싸서 다른 언니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어설프게 과자랑 약을 들고 서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 웃겨서 여기에 더 있을 필요가 있나, 내 도움이 필요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이 상황의 불청객이 된 느낌이랄까? 그래도 환자분을 껴안고 다독이면서 과자랑 약 좀 드시라고 상 위에 올려놨다. 그냥 안아주고 달래주는 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후 1시쯤에 한번 상태 확인하러 가봤는데 세상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환자분들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인실에 입원한 분들의 경우 누구랑 같이 방을 쓰냐에 따라 치료 호전 정도나 속도가 달라진다. 병실 내에서 친구도 적당히 만들어 지내면 사람이 덜 적적해지고 더 긍정적이게 돼서 그런지 확실히 빨리 낫는다. 그리고 같이 옥상에서 걷기 운동도 하다 보니 치료 효과가 높아진다. 


환자분은 다행히 주변에 힘이 돼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건 당시에는 무너져 내릴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는데 저녁에 보니 내가 갖다 드린 빅파이를 드시면서 병실 언니들과 하하 호호 웃고 계셨다. 멀리서 날 보고는 후다닥 오시더니 너무 고맙다며, 어떻게 단 거 좋아하는 걸 알고 챙겨 오셨냐며, 청심원도 좋았고 과자도 너무 감사하다며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특별히 한 게 없었기에 너무 과하게 감사 인사를 받는 건 아닌가 싶어 조금은 민망했다. 그런데 아까 상태보다 더 나아지면, 그것도 치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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