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씻은듯이 다 나았어요
C 환자분은 요구르트 5개 묶음에 빨대를 하나씩 꽂아서 하나하나 마시는 분이었다. 5개 묶음 겉비닐봉지를 뜯지 않은채로 말이다. 병실에서 요구르트 파이프를 부는 도인이었다.
백발의 C님은 병동에 다리를 질질 끌면서 올라오셨다. 다리 저리고 엉치 아픈게 심해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일단 휠체어를 써보시라고 드렸다. 하지만 그 정도 병신은 아니라며 거부하셨다.
우울증이 심한 분이었다. 아침에 병실 커튼을 걷으면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자세로 침대 구석에 누워계셨다. 우울증 약 기록을 보고 의식적으로 대화를 더 많이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수가 너무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도 잘 모르겠는 분. 병실 내 다른 환자분들과도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이런 분이 절대 문제는 안 일으키는 모범생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한다.
실제로 C님은 치료에 있어서도 모범생이었다. 하루 두 번씩 치료를 받고 나서 운동에 열심이셨다. 내가 병동을 오며가며 볼 때 C님은 병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는 때보다 복도에서 벽을 잡고 걷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어느 날은 복도에서 걷다가 그대로 주저앉으셨다. 다리에 쥐가 너무 내려서 더 이상 걷지 못하시겠다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C님을 부축해서 병실로 데려다드렸다. 침대에만 들어가면 복도에서 커보였던 분도 한없이 작아지는게 이상했다.
C님의 재활운동은 계속됐다. 하도 6층 복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왔다갔다하시니 다른 병실 환자분들도 백발 할아버지의 재활을 응원했다. 오늘 그 할아버지 어제보다 더 걸으시데? 내가 C님 라운딩 가기 전에 복도에서 마주친 다른 환자분이 먼저 언질해주기도 했다. 이미 병동 사람들은 C님이 복도 끝과 끝을 한번도 쉬지 않고 왕복하는걸 기원하고 있었다.
병동 슈퍼스타가 된 C님이 어느 날 화장실 앞 휴식 공간에서 요구르트를 드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운동 벌써 다 하셨어요? 네, 오늘 좀 잘 걸었어요. 싱긋 웃는 C님이 신나셨는지 가족분들과 1층에서 면회도 하고 오셨다고 했다. 자신이 이렇게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며 저린게 이제 거의 없다고 좋아하셨다. 내일은 한번 멀리까지 걷다가 와봐야겠다고 하셨다. 외출은 안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속으로는 이제 병동 복도나 옥상 정도는 다 마스터 하셨구나, 정말 많이 나아지신게 맞구나 싶었다.
여느 아침처럼 병실 커튼을 걷으며 C님 성함을 호명했다. C님 어제밤엔 잘 주무셨나요?
이제 씻은 듯이 나았어요. 오늘 퇴원하면 될 거 같아요.
C님이 날 기다렸다는 듯이 푸른색 런닝만 입고 계시던 보통 날들과는 다르게 환자복을 제대로 단추까지 다 채우고 반듯하게 입고 침대에 앉아계셨다. 씻은 듯이 나았다는 표현이 새롭게 다가왔다.
요구르트 할아버지, 씻은 듯이 다 낫고 혼자 집으로 잘 돌아가셨다. 가시기 전에 내게 주신 요구르트를 마시며 병동에서의 C님과의 추억을 가득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