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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삶 Oct 30. 2022

닥터 고, 이 병원을 떠나게나

제가 이 병원을 어떻게 떠나겠어요

6월부터 담당과가 변경됐다. 

입원 예약에 D 환자분의 이름이 떴다. 의국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렸다. 내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찾아와 말씀하셨다. 이 분 작년에 우리 병원에서 돌아가실 뻔했어요. 겨우 서울로 트랜스퍼돼셨죠. 보면 알겠지만 혈액검사도 박살 나있고 수술도 엄청하신 분이라 원장님의 관심 환자세요. 이번이 9번째 입원이시고... 차트 하나하나 다 확인하시니 제대로 해야 해요 알았죠?


작년 차트에서는 그런 급박한 상황이 읽히지는 않았다. 과거력은 정말 화려했다. 등에서부터 허리뼈까지 뼈도 일부 잘라내고 핀도 14개나 박았다. 작년에는 저혈당과 혈변이 계속됐고 조절이 안돼 응급실로 실려가신 거였다. 수술 후 증후군을 관리하러 오시는 건가? 이런 분이 작년에 응급실 갔다가 다시 우리 병원으로 돌아오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메모에 예민한 성격이라고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말을 잘 안 해주는 할아버지겠거니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아침 라운딩에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난 또 괴로워하게 됐다. 틀에 박힌 대답만 해주고 내가 원하는 만큼 답변을 안 해주는 것이었다. 뭔가 질문이 잘못됐나 싶어 고민을 하고 미리 준비해 가도 D님은 벽을 쳤다.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못 견디면 난 그 자리를 떠날 때인 거다. 


어느 날, 7층 계단참에서 운동하는 D님을 만났다. 아침이 아닌 때에 보는 건 또 새로웠다. 이때가 D님이 입원한 지 2주째였다. 대뜸 내게 어느 학교 나왔냐고 물었다. 아 이 지역분들은 잘 모르는데 XX대학교 나왔다. 이러니 XX대학교 YY시에 있는 거 아니냐며, YY시 잘 아신다는 거다. 그 병원이 평지에 있지 않나며, 거기가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인간미가 있는 병원이니 이 병원을 떠나라고 하셨다. 내 미래를 위해서. 


한의사가 아닌데 내 모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D님이라니. 더 놀라운 건 모교 한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길게 받은 적이 있으신 거였다. 그때 치료받았던 교수님 성함을 말씀하시며 이 교수님 아냐고 물어보는데, 작년에 실습 돌 때 뵀던 분이니 당연히 알죠. 너무 반가웠다. 혈혈단신 생면부지의 지역에서 수련을 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나와 희미한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게 신기하고 또 설렜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구나. 


닥터 고, 닥터 고네 학교 병원에서 치료받고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엄청 예전에 YY시에서 총각 때 셋방살이할 때인데 그때 XX대 한방병원에서 허리 치료받았어요. 그 후로 YY시를 떠나 이곳으로 왔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죠. 만약 닥터 고가 다시 학교 병원으로 돌아가면 저도 따라갈게요. 


D님과 차트 너머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술 후 후유증은 관리지 완치까지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저도 큰 기대는 없어요. 근데 내년쯤엔 다시 수술하러 들어갈 예정이에요. 아니 이미 핀을 다 박았는데 뭔 수술이에요, 그러다 척추뼈 다 무너지겠어요! 말려도 어차피 한 번 깐 이상 끝장을 봐야 할 거 같다고 하셨다. 정말 D님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수술만이 답이 아니에요. 좀 더 지켜보는 건 어떠세요.


날 인턴, 아가씨, 저기요가 아닌 닥터 고라고 부르는 D님. 갑자기 오후 2시에 혈압이 68로 떨어졌다. 

병동에서 작년의 해프닝이 있어서 D님 관련 연락으로 내게 끊임없이 연락했다. D님은 자기는 원래 이렇다며, 3주만 넘어가면 혈압이랑 혈당이 제정신을 못 차린다고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병동은 비상사태였다. 밥도 안 드시고 실시간으로 살이 빠져가고 안색이 안 좋아지는 D님의 모습을 보며 영양제 수액이라도 맞자고 겨우 달래서 맞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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