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통이 나타나는 부위
허리가 가늘다. 허리둘레가 어떻게 돼요. 이런 말을 보면 허리는 분명 원통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해 앞이 있고 뒤가 있고 옆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허리의 통증을 보여주는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모두 손으로 허리 뒤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허리 앞을 잡고 '아이고 허리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분명 허리에도 앞이 있는 데 왜 허리 앞을 잡고 아프다고 하지 않는 걸까. 요통은 대부분 허리 뒤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허리 앞이 아프면 요통이 아니고 복통이다. 허리 앞에는 배가 있고 배가 아픈 걸 복통이라고 하니 말이다. 무슨 말장난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일지 모르나 말장난 같은 이 내용을 살펴보면 요통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요통은 허리의 뒤가 아픈 거를 이야기한다. 아니 요통은 허리의 뒤에서 주로 발생한다. 왜 요통이 허리의 뒤에서 주로 발생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척추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척추는 크게 몸통과 돌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몸통은 인체의 몸통이 아니라 개별 척추의 몸통 부위를 말한다. 개별 척추의 몸통은 둥글게 생긴 원통형 모양이며 부피로는 척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척추 몸통의 뒷부분에 돌기가 있는데 뒤쪽으로 뻗어있는 후방 돌기(극돌기)가 있고 옆쪽으로 뻗어있는 측방 돌기가 있다. 후방 돌기와 측방 돌기 중간쯤에 위아래 척추의 움직임의 중심이 되는 관절돌기가 있다. 이 중에서 허리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곳은 관절돌기 부위이다. 위아래 척추의 관절돌기가 만나서 척추 관절을 형성하고 이 곳을 중심으로 척추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척추의 몸통과 돌기 사이에 빈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 데 모든 척추의 이 빈 공간이 이어져서 척추관을 형성하고 이 척추관 내측에 척수신경이 자리 잡고 있다. 척수신경에서 각 척추의 후측방 사이로 신경가지가 뻣어 아래로 내려가 발 끝까지 가게 된다.
고속도로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고속도로가 척추관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신경이라 할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지방도로로 나가기 위하여 나들목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 나들목이 위아래 척추의 돌기와 몸통 사이의 후측방에 위치한 공간이다. 허리의 통증은 주로 이 나들목 주위에서 발생한다. 실제 고속도로 나들목은 고정된 상태이므로 특별히 교통사고나 자동차 정체가 일어나지 않으면 큰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지만 척추의 나들목은 관절돌기 주위로 항상 움직임이 있는 곳이다. 척추 관절의 움직임으로 척추의 나들목은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한다. 척추의 나들목이 좁아지면서 나들목을 빠져나오려는 자동차(신경)를 건드리면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고 허리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실제 도로에서 나들목은 고정되어 가만히 있는 데 자동차가 서로 빨리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사고가 나지만 척추의 고속도로에서는 나들목이 움직여서 자동차와 충돌하여 사고가 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나들목을 형성하는 위아래 척추 돌기가 직접 충돌하여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척추 돌기가 직접 충돌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척추 돌기가 너무 가까워져서 나들목이 좁아지고 그 사이를 빠져나오는 자동차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여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척추관 협착 증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협착 증상이 고착화되면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병명으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다음 편에서 디스크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아보겠지만 척추 몸통 사이에 있는 디스크가 뒤쪽으로 밀려 나와 나들목의 공간을 차지하므로 척추관 협착 증상을 나타낼 수 있으나 이러한 경우는 척추관 협착증이라 하지 않고 디스크 질환으로 별도로 다루고 있다. 그 원인이 디스크이든 척추관 협작증이든 결과적으로 척추 후방 부위의 공간을 좁게 만들어 조직에 부담을 주고 그 부담 자체로 통증이 발생하거나 그 부담 상황이 지방도로로 빠져나가는 자동차(말초신경)에 자극을 주어 통증이 발생하게 된다.
진단명으로 척추관 협착증이라 할 때의 협착이 일어나는(좁아지는) 부위는 척수신경이 지나가는 척추관 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척추관을 빠져나와 나들목을 빠져나오는 공간까지 모두 포함하여 이야기한다. 척추관 협착증으로 진단을 받은 많은 환자는 척수신경이 지나가는 척추관이 좁아진 경우보다는 척추관과 나들목 사이 공간이 좁아진 경우이다. 척추관과 나들목 사이의 공간이 좁아지는 원인이 나들목 주변 구조물의 변형이나 손실로 인한 경우를 척추관 협착증이라 하고 고속도로 하부의 지반에 변화가 생겨 땅이 돌출되어 좁아지는 경우를 디스크 질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요한 점은 허리 통증(요통)은 척추의 나들목 주위에서 주로 일어나며 척추의 나들목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움직이고 있으며 나들목의 상태도 주변의 변수로 인하여 항상 변하게 된다는 거다. 실제 고속도로 나들목이 계속 움직이고 변하는 상황에서 운전을 하면 교통사고가 엄청 증가할 걸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리 통증이 발생하는 거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움직이는 나들목이라니! 더욱이 한 번도 보수공사를 하지 않고 사용 중인 나들목 이라니!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상황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나들목이 움직이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만 볼 거는 아니다. 척추의 나들목 부위가 움직이는 구조이므로 디스크 질환이나 척추관 협착증이 발생하더라도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적 방법으로 관리를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다. 척추 나들목 주변의 구조물은 완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연부조직(근육. 인대 등)으로 묶여 있는 상태이므로 구조물의 변형 상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러한 보존적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게 되면 구조물에 외부의 장치를 이용하여 보수(수술)하는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이 글은 외부 장치를 이용한 보수작업의 전 단계인 보존적 방법과 관련된 글이다.
정리하면 요통이 주로 발생하는 부위는 척추 나들목 주위의 근육, 인대, 신경, 관절이다. 이 부위가 비정상적인 자극을 받을 때 통증을 느끼게 된다. 척추 나들목 주위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모든 조직이 제 역할을 하는 데에 방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게 요통관리의 기본 원리라 하겠다.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아서 발생하는 요부통, 타박상 근육통을 제외하면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예고한 대로 디스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디스크 하면 요통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으로 생각하는 독자분이 많을 걸로 생각되나 디스크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나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 편에서 디스크의 기본적인 성질에 대하여 살펴본다.
대학에서 해부학을 처음 공부할 때의 일이다. 척추의 구조와 각 부위의 명칭을 외우느라 머릿속이 척추로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던 때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식당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바닥에 척추가 나뒹굴고 있는 거다. 나는 보물을 발견한 거처럼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척추를 주워 집으로 가져와서 깨끗이 닦아 한참 동안 가지고 나의 해부학 모형으로 사용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흘러나온 동물 척추뼈였다. 온통 머릿속이 척추로 가득 찼던 당시에는 음식점에서 나온 동물뼈도 매우 귀중한 보물 같은 존재였다.
그때의 동물 척추뼈는 아니지만 지금도 내 책상 위에는 척추뼈 모형이 무슨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척추뼈는 보면 볼수록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구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