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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트 Dec 30. 2023

시창작론 정리_시적인 것

주간 라트 2352

우리는 일상에서 '시적이다'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시적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해 오던 시적이라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감상적인 상태, 또는 낭만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시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나 생각한다.


시라는 장르를 설명하는 흔한 단어들로는 감상성, 낭만성, 진지함, 기발함, 비현실성, 순진함, 엉뚱함, 비약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들은 우리가 시를 쓰고자 할 때에 오히려 극복해야 할 것 들이다.


감상적 언어는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하고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흔하게 사용하여 진부해진 단어와 표현만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피상적인 것이 되기 쉽고 상투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


낭만적인 관점에서만 시를 보려 할 때는 현실과 동떨어진 저 너머의 초월적인 의미에 기대어 점점 더 현실 감각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시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만이 쓸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글을 씀으로써 시적인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렇듯 특이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시를 쓰는 사람이 지향할 시창작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독자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을 시에 기대하고 있다.


감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 줄 때에 독자는 감흥을 얻고 재미를 느낀다. 그 재미란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발견과 사고의 도약이 가능하게 함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사고의 도약을 이룰 때에 독자는 통상 해 오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고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엉뚱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존재하는 사물과 시공간을 새롭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시는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그 삶 속에서 실패와 좌절, 고통과 아픔, 결핍과 공허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순간들을 넘어서도록 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에 소개하는 세 시인의 작품에서 '시적인 것'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 보자.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 빅토리 위고(Victor Hugo)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여름과 같이 아름다운 나의 노래를

그대 꽃밭에 보내줄 것을

하늘로 날아가는 새들처럼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공중에서 번쩍이는 번갯불같이

그대 웃음 짓는 화롯가를 찾아갈 것을

저 하늘의 천사처럼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그대 집 등 넝쿨 아래에 가서

밤이 새도록 기다릴 것을

길을 재촉하는 사랑의

날개가 있다면




빅토르 위고의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은 '그대'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리움의 노래이다. 3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연 첫 행은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으로 시작된다. 이 가정법은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이 그대에게 가닿기를 원하는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지 이미 실현된 꿈이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희망의 노래를 통해 불확실한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서 가능성의 영역에 꿈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시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창작론> 6쪽




 -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다.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수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 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라는 작품에서 시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라고 고백하며 출발한다. 이 알 수 없음은 시의 근간이자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잘 알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더듬어 보며 알아 가는 것이 시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대답을 잘해 주는 시, 확실히 규정해 주는 시, 그럴듯한 해결을 보여 주는 시가 쓰일 수 있지만 그것이 품을 수 있는 의미는 평면적이거나 편협한 것이 되기 쉽다. 차라리 고통과 인내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 다른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더 많은 이들에게 불확정적인 세계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창작론> 7쪽



희망은 날개 달린 것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에 둥지를 틀고

말이 없는 노래를 부른다네,

끝없이 이어지는 그 노래를,


드센 바람 속에서 가장 감미로운 그 노래를.

매서운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

그 작은 새는

수많은 이들을 지켜 주리니.


가장 차가운 땅에서도

그리고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나는 들었네.

그러나 최악의 처지일 때도, 단 한 번도,

그 새는 내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네.




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불확실한 신앙심을 고백하고 학교에서 쫓겨난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며 가족을 돌보고 정원을 가꾸며 생활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허용된 시간에 충실하게 시를 쓰며 지내다가 희귀병에 걸려 고통 속에 죽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희망은 날개 달린 것>에서 "말이 없는 노래",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감미로운 노래"는 폭풍 속에서 수많은 이를 따뜻하게 지켜 주는 '새'로 표현된다. 그 새는 차가운 땅에서도, 낯선 바다에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시는 특별한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독자를 교육하고 보듬으려고 한다.


교육의 수단이자 계몽의 형식으로 문학적 글쓰기가 자리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글쓰기는 훌륭한 놀이의 형식이자 첨단의 유희로서 보다 인간적인 삶을 지켜 가는 언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창작론> 7쪽


[참고문헌]

- 김신정, 손택수, 신동옥, 이근화, 하재연 공저(2023). 시창작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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