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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트 Jan 13. 2024

시창작론 정리_시어

주간 라트 2402

시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시어를 선별하여 써야 하는가?


우리가 시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독특해 보이는 단어는 독자가 시적이라고 느끼는 데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독자는 시에서 사용되는 단어보다는 말의 연결을 통하여 표현되는 낯설고 이질적인 관계를 통하여 시를 향유하게 된다. 말의 낯설고 이질적인 관계는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상상을 하게 하여 사고의 도약을 이루게 해 준다. 그러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시를 즐긴다.


시를 쓸 때에 시적인 느낌을 주고자 하는 욕심에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 들만을 찾아 나선다면 그 시는 인공적으로 꾸며진 진열장 속의 장식품이 될 수 있다. 특이한 시어 만을 찾기보다는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말이 삶과 밀착되어 사용되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독자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항상 쉽게만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시에는 시인만의 개성과 스타일이 들어 있어야 한다. 수필과 같은 줄글을 행갈이로 바꾼다고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


시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시어란 단지 특별한 단어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어는 시를 쓰는 사람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특별히 감지되는 사물과 감각에서 발견된다.


사과를 재료로 하여 시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역사적, 종교적, 신화적인 상징으로 사과에 부과되어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다. 백설공주의 독사과에서부터 성경 속의 선악과, 뉴턴의 사과, 애플사의 로고로서의 사과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진부한 이미지를 떨쳐내고 나만의 개성과 스타일이 담긴 새로운 사과를 찾아내는 일이 시인이 할 일이다. 


사과를 소재로 하는 다음 두 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어떻게 새로운 사과를 재탄생시켰는지 살펴보자.




새는 날아가고 - 나희덕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은 사과를 베어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담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박동을

너는 들어본 적 있니?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

사과를 잃어버리고도

접시가 아직 깨어지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식탁과 접시는 말없이 둥글고

창밖은 고요해

괄호처럼 입을 벌리는 빈 접시,

새는 날아가고

나는 다른 심장들을 삼키고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지




저녁나절 식탁에 앉아 사과를 깍아 먹는 일이 그리 특별한 사건은 아니지만 접시 위의 잘 깎인 사과를 마주하여 사과의 '두근거림'을 느끼는 감각으로부터 시적 순간은 발생할 수 있다. '붉음'은 사과의 색이 아니라 두근거림의 빛깔이 되며, 둥근 모양은 사과의 것만이 아니라 식탁과 접시의 '말 없음'과 닮아 있다. 새가 물고 달아난 심장은 사과나 접시의 것일까 묻지만 접시 위의 사과를 바라보는 '나'의 것임이 드러난다.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두근거림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은 내가 겪은 상실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이나 괄호처럼 입을 벌린 접시에 대한 서술은, 창밖의 고요와는 다르게 들끓고 있는 화자의 내면을 환기시킨다. 이 시는 상실감과 고통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의 순간으로부터 건져 올려 차분하게 질문을 던지며 구체적인 감각으로 풀어 감으로써 독자에게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시창작론> 10, 11쪽




사과 - 이수명


이제 사과는 포장되지 않는다

상자는 열려 있다.

상자 속의 사과들도 열려 있다


내가 사과를 가로질러 갈 때

사과는 열매를 지속한다

보이지 않는 한쪽 수갑을 지속한다


저절로 부서지는 기계가 될 때까지

사과는 사과를 사용한다

사과는 발전시킨다


죽은 사과들이 몸을 오그리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나의 두 팔이 휘어진다


나는 사과를 먹는다

먹은 후 껍질을 깎는다

칼로 자른다




위의 시에서는 사과를 형상화하기 위해 '지속한다', '사용한다', '발전시킨다' 등의 서술어를 활용하는데 어찌 보면 과일의 형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과를 '본다'대신에 사과를 '가로지른다'로 대체하는 것도 "먹은 후 껍질을 깎는다"라고 선후 관계를 역전시킨 것도 일상적인 말의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일상적인 화법으로 시의 내용을 바꿔 보자면 '잘 포장된 사과 상자가 있고,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든 사과를 하나 꺼내 들었다. 빛깔과 향이 좋고 싱싱한 사과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물끄러미 보다가 칼로 잘라 보기 좋게 깎아서 먹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길고 지루한 설명은 시가 되지 않는다.


낯선 서술어의 연결과 전후 관계의 역전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과'와 만날 수 있게 된다. 싱싱한 과일 하나를 먹는 것은 삶의 에너지를 얻는 일이기도 해서 '사과'는 마치 낯선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시가 이질적인 말들의 새로운 결합으로 감각을 개발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창작론> 12, 13쪽


[참고문헌]

- 김신정, 손택수, 신동옥, 이근화, 하재연 공저(2023). 시창작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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