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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트 Jan 20. 2024

[소설] 인간생산시대_창아와 친구들

주간 라트 2403

창아가 모임 장소에 도착하였을 때에 두 친구가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었다.


성격이 쾌활한 연산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어이! 걱정 없는 놈, 어서 와라."


"그래, 잘 지냈냐?"


창아는 연산의 농담 섞인 인사말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편안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연산은 인간생산시설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다. 정부에서 계획에 따라 인간생산시설에서 인간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부부관계에 의해 태어나는 출산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으므로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아이를 갖는 것은 인간생산시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발적인 부부관계에 의한 출산에 대하여 인간생산시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내용에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등도 다를 바가 없다는 도 포함된다. 연산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자비로 충당하고 연산을 돌봐야 했다.


연산은 요즈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에 골몰하고 있다. 반면에 창아는 정부에서 알선해 준 기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 이를 두고 연산은 창아를 '걱정 없는 놈'이라고 비아냥 섞인 뉘앙스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창아는 연산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 함께 앉아 있는 산모에게 말을 건다. 산모는 임신 8개월로 배가 불룩한 것을 감출 수가 없는 상황으로, 창아가 보기에 산모의 몸이 약간 불편해 보였다.


"산모야! 몸은 괜찮냐?"


"괜찮지. 안 괜찮을 거 없잖아. 임신이 한두 번도 아닌데."


"크으, 그렇긴 하지. 너, 이번이 세 번째 임신인가?"


"그렇지. 아마도."


창아가 태어날 때만 하더라도 인간생산시설에서 고용한 임산부들이 모두 저개발국가의 여성들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대한민국 토박이 젊은 여성들 중에도 인간생산시설의 임산부가 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임산부를 직업으로 갖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1년을 출산 업무에 근무하고 1년은 휴가를 받는 근무 환경을 좋아하고 있다.


산모는 휴가기간 동안에 6개월간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친구들이 산모를 부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산업무라는 것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물론, 임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오는 변화로 인해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직업에서도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가의 존폐 위기에 처한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해 낸다는 데에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부에서는 자국의 여성들에게는 추가 인센티브를 주고 있어서 근무환경도 매우 좋은 편이다. 임신 근무 중에 각종 문화생활과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 주다 보니, 인간생산시설에서 근무하는 임산부들의 건강이 일반 여성들보다 좋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연산이 창아에게 말을 건다.


"창아야, 너는 좋겠다. 나는 요즘 취업 준비를 하느라고 완전 고민 중이다. 너는 취업이 확정되었다며."


"그래, 취업은 확정되었는데, 모르겠어. 이것이 좋은 것인지."


"취업이 되었으면 되었지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는 거냐? 나도 여자로 태어났으면 산모처럼 임산부로 취업을 할 건데."


"야, 너는 안돼. 너 같은 자연산은 인간생산시설에서 뽑아 주지 않는다고."


"무슨 말이야. 너 생선도 자연산이 좋은 거 모르냐?"


"크으, 그건 생선이고. 너 거울도 안 보냐? 너같이 작달막한 키에 왜소한 몸을 갖고 있는 사람을 누가 임산부로 써 주냐?"


"그런 소리 말아라. 요즈음은 개성시대라서 나 같이 일반적이지 않고 독특한 사람이 더 인기 있다는 거 모르냐?"


"글쎄, 그건 네 생각이고, 나는 잘 모르겠다."


"알았다, 알았어. 아무튼 어떻게 되겠지. 일단, 오늘은 실컷 마셔보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으나 창아의 얼굴은 점점 비장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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