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라트 2402
시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시어란 단지 특별한 단어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어는 시를 쓰는 사람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특별히 감지되는 사물과 감각에서 발견된다.
사과를 재료로 하여 시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역사적, 종교적, 신화적인 상징으로 사과에 부과되어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다. 백설공주의 독사과에서부터 성경 속의 선악과, 뉴턴의 사과, 애플사의 로고로서의 사과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진부한 이미지를 떨쳐내고 나만의 개성과 스타일이 담긴 새로운 사과를 찾아내는 일이 시인이 할 일이다.
사과를 소재로 하는 다음 두 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어떻게 새로운 사과를 재탄생시켰는지 살펴보자.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은 사과를 베어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담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박동을
너는 들어본 적 있니?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
사과를 잃어버리고도
접시가 아직 깨어지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식탁과 접시는 말없이 둥글고
창밖은 고요해
괄호처럼 입을 벌리는 빈 접시,
새는 날아가고
나는 다른 심장들을 삼키고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지
사과 - 이수명
이제 사과는 포장되지 않는다
상자는 열려 있다.
상자 속의 사과들도 열려 있다
내가 사과를 가로질러 갈 때
사과는 열매를 지속한다
보이지 않는 한쪽 수갑을 지속한다
저절로 부서지는 기계가 될 때까지
사과는 사과를 사용한다
사과는 발전시킨다
죽은 사과들이 몸을 오그리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나의 두 팔이 휘어진다
나는 사과를 먹는다
먹은 후 껍질을 깎는다
칼로 자른다
위의 시에서는 사과를 형상화하기 위해 '지속한다', '사용한다', '발전시킨다' 등의 서술어를 활용하는데 어찌 보면 과일의 형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과를 '본다'대신에 사과를 '가로지른다'로 대체하는 것도 "먹은 후 껍질을 깎는다"라고 선후 관계를 역전시킨 것도 일상적인 말의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일상적인 화법으로 시의 내용을 바꿔 보자면 '잘 포장된 사과 상자가 있고,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든 사과를 하나 꺼내 들었다. 빛깔과 향이 좋고 싱싱한 사과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물끄러미 보다가 칼로 잘라 보기 좋게 깎아서 먹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길고 지루한 설명은 시가 되지 않는다.
낯선 서술어의 연결과 전후 관계의 역전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과'와 만날 수 있게 된다. 싱싱한 과일 하나를 먹는 것은 삶의 에너지를 얻는 일이기도 해서 '사과'는 마치 낯선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시가 이질적인 말들의 새로운 결합으로 감각을 개발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창작론> 12,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