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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trea May 11. 2019

3. 아저씨로부터 배우는 ‘배려’라는 이름

4년 차 캄보디아 NGO 현장활동가

프놈펜에서 일하던 시절, 우리의 출장길을 늘 함께하던 아저씨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프놈펜과 앙코르 보레이를 오가는 길을 운전해주시던 분이다.
벙넷(Bong neth)이라 불리던 그분은 나이는 족히 40대 후반쯤은 되실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그분을 기억하는 까닭은
내가 만난 캄보디아 분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특별한 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늘 자신의 일 이외에도 우리를 척척 도와주시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어떨 땐 우리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시기도 하시고,
내가 곤란한 상황일 때면 우리 직원보다 더 빨리 그것을 알아차려서 날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맡은 일도 다 해내지 못해 바둥거리거나
맡은 일을 끝내면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서만 서 있는데 아저씨는 달랐다.
늘 운전을 하고 나서도, 짐을 함께 옮겨주시는 건 물론이고
내가 캄보디아어가 되지 않으면 그것마저 도와주셨다.
물론 아저씨는 영어를 거의 못하신다.
하지만 눈치껏 내 말을 다 알아들으시고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셨다.
늘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그냥 운전하는 아저씨가 아니라 우리의 직원 같았다.
아저씨가 바빠서 오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늘 아쉬워했으니 말이다.
 
그런 아저씨를 보며 나는 늘 배려가 무엇일까 생각하곤 했었다.
나라면 도무지 저렇게까지 사람을 배려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가끔 아저씨를 멀리서 보며 배려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었다.
 
처음엔 그것이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우리의 관계가 나는 NGO에서 일하는 한국에서 온 직원이고 아저씨는 운전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것이 유세는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어쨌든 특별해질 수밖에 없는 위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를 보며 하는 배려였다면
누구의 말처럼 그것은 금세 들통날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돌아온 후,
아저씨를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아저씨는 그때 모습 그대로인 채 나타나셨다.
집이 프놈펜 내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외곽 쪽이신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 하나를 보기 위해 나와주신 것이다.
 
어제는 이전에 우리가 회식장소로 자주 가던 BBQ가게를 갔다.
그곳은 많이 변해있었지만 우리는 무언가 그대로였다.
아저씨와 같이 일하던 캄보디아 직원까지.
어느 회식 날처럼 술을 시키고, 열심히 배를 채웠다.
그러다 내가 게와 새우 껍질을 아무 데나 쌓아놓고 있자
아저씨가 나에게 슬그머니 그릇을 내미신다.
그 작은 배려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기분 좋게 하던지.

그 후에도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나 역시도 아저씨를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껄껄 웃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하며 말이다.

그런 아저씨가 요즘 장사가 잘 안된다는데 큰일이다.
여전히 참 좋으신 분인데 말이다.
하루빨리 이런 좋은 사람들이 잘 사는 캄보디아가 되면 좋겠다.
서로 돈 많이 벌라며, 건강하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일에 치여, 경쟁에 치여 사는 세상 속에서
그냥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지 않던가.
배려가 무엇인지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행동으로 보여주던 아저씨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p.s: 아저씨는 이 글을 보지 못하시겠지만
꼭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저씨를 기억해두고 싶어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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