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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스파거스 Aug 30. 2024

무계획 도파민 중독, 극 P들의 계획 짜기.

거기에 미루기를 더한

    

    그렇다. 우리 둘은 극 P다. 물론 상대적으로 보면 내가 N보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면 아주 초라한 수준이다. 


    연애 초반까지만 해도 이렇게 무계획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첫 여행지인 춘천 같은 경우에는 타임 테이블까지 준비해서 준비하고 놀았던 우리지만. 10년이란 시간이 우리를 무디게 만든 건지. 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녀석들이었는지 엄청난 무계획쟁이로 변해버렸다.


    실제로 1년 전 베트남 여행은 가는 항공권을 전날 결제했으며, 첫날 새벽에 머물 속소 정도만 예약하고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이 수많은 여행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여행이 될 정도로 재밌게 즐겼다. 그런 무계획의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도 아프리카라는 낯선 벽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었다.


    맞자. 우리의 아프리카 최종 목적지는 '탄자니아'다. 여기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인턴을 한 친구가 있는 데, 그 친구가 치안도 괜찮고 너무 좋다고 추천해준 것이 결정의 큰 이유였다. 


    어쨌든 탄자니아 여행은 사전에 준비할 것이 많았다. 1주 차는 세렝게티 사파리, 2주 차는 탄자니아 섬에서의 휴양이라는 큰 계획을 세운 우리가 먼저 준비할 것은 사파리 업체를 구하는 것이었다. 조용필의 '킬라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에서 익히 우리가 알듯 먹이를 찾아 헤메는 동물이 많이 서식하는 동네가 크게 탄자니아, 케냐이기에 사파리 업체들이 정말 무궁무진했다. 우리나라 업체부터 현지 업체까지 정말 많은 업체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커스터마이징 가능했다. 프라이빗인가? 그룹투어인가? 어느 정도 컨디션의 숙소에서 잘 것인가? 며칠 머물 것인가? 이렇게 세밀한 부분까지 정해야했다. 결혼 준비에 N보다 소홀했기에 신혼여행만큼은 내게 맡겨달라고 했던 말이 조금은 후회됐다. 나는 써브웨이에 가면 아채 전부랑 소스는 추천 소스로 해달라고 한다.(사실 올리브와 피클을 싫어하지만 귀찮아서 다 달라고 한다) 나중에 차를 사게 된다면 "그냥 잘 넣어주세요"라고 할 것 같이 선택을 잘못한다. 귀찮아서.


    그렇게 귀찮다는 핑계로 5개월 전에 할께라고 했던 예약은 어느덧 출발일 3개월 전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N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평점이 좋고, 간혹 한국인들의 단비와 같은 한글 후기들이 있는 곳들에 메일을 보냈다.



'견적 부탁드립니다'

조건  : 그룹투어, 프라이빗 투어 모두.

일정  : 4박 5일

숙소 : 중간 수준의 롯지


    그렇게 10곳정도 메일을 보냈고 다음 날부터 답장들이 쏟아졌다. 저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사파리 동물들을 메인으로 한 PDF 견적서들이 쏟아졌고 이를 엑셀로 정리했다. 정리하면서 깨달은 것은 프라이빗 투어는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그룹투어는 그것이 안된다는 점. 그리고 그런 장점 때문에 가격이 3배 비싸다는 점.


    할 수 있는 최대한 예쁘게 엑셀로 정리하고 미루기 대마왕에게 화가 나있는 N에게 갔다.


"이거 볼래? 내가 정리하고 연락해본 건데..."


화가 나있던 N은 내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보고 화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맨날 혼나고 하고, 혼나고 하고 먼저 좀 하면 안 돼?"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지킬 수 있는 말만 한다. 저 말은 지킬 수 없을 확률이  높다. 말을 돌렸다.


"프라이빗이랑 그룹투어 가격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

"그럼 그룹으로 하자"


    Cool, Fun, Sexy 하게 의사결정이 끝났다. 블로그 후기나 한글로 적혀있는 대부분의 후기가 프라이빗 투어 기준이었다. 때문에 그룹투어의 후기를 찾기는 쉽지않았고(1~2개 정도 찾긴 했는데 텐트 숙박이어서 우리가 원하는 옵션의 후기는 결국 찾지 못했다) 동시에 신혼여행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갈림길 속에 있던 내게 결정을 내려준 N에게 다시 반했다. 그렇게 그룹 투어로 결정하고 세부적인 가이드 팁, 보증금, 식사 포함 등의 정보를 비교해서 1개 업체를 예약했다. 


    사파리가 좋은 게 4박 5일 동안의 숙소, 식사, 이동 수단 모든 게 확정이 되기에 우리는 휴양 때 즐길 수 있는 숙소만 고르면 됐다. 휴양하러 가는 잔지바르에서 우리는 이틀은 호화롭게 즐겨보자며 한국인들의 후기가 제일 많은 숙소의 '올인클루시브' 옵션을 선택했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음식 및 주류들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건데 비수기 기간이어서 1박 50만원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예약을 했다. 나머지 3일 숙소는 어떻게 잡았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숙소 잡기 원칙을 설명해줄까 한다.  


    화장실이 깨끗하다  

    침대 시트가 하얀색이다.  


    심플하지만 우리 둘의 여행에서 한번도 실패한 적없는 공식이기에 1박 10만원 정도 저렴이 숙소로 에약을 했다. 이제 자는 곳과 놀 것이 모두 정리가 되고 우리는 예방주사를 맞으러갔다.


    탄자니아 입국 시 지금은 필수가 아니지만 황열병 주사 증명서를 요청하는 날이 있다고 한다.(왜 그러는 거야..) 이를 위해서 중앙대병원에 주사 예약을 하고 평일에 시간을 맞췄다. 황열병 주사는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필수 권고되는 주사이기에 의사 선생님이 바로 어디가는 지 물어보셨다.


"탄자니아로 신혼여행 갑니다"


    그떄 내가 진짜 가는구나! 라는 실감이 났다. 주사를 맞고 또 걱정되었던 말라리아 관련해서 약을 처방받았다. 처방전을 갖고 약국으로 갈 때 문득 든 생각.

'이거 먹으면 우리 신혼여행 동안 술 못 먹는 건가?'

찌찌뽕이다.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단 약은 갖고 가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깐. 


대강 준비는 완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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