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혼식 당일에 신혼여행을 출발했다.
결혼식 오후 1시, 비행기 출발시간 오후 11시. 충분한 휴식을 하고 비행기를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만한 자에게는 시련이 따른다고 했는가. 인생의 맛을 느낀 하루였다.
결혼식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예전부터 바라고 원했던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우리는 아직 우리 결혼식이 제일 맘에 든다) 우리가 생각했던 분위기와 가득 메운 하객들, 웃으며 내게 혼인서약서를 건내줬던 귀여운 화동, 떨렸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던 나의 축가(나는 시실 강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그녀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결혼식을 할 때 N은 재밌다는 감정을 느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문제는 정산부터 시작되었다.
식이 모두 끝나고 나오는 식사를 생략했다. 결혼식 전에는 혼주석에 별도로 나오는 스테이크에 대해 항상 의문이 있었다. 뷔페도 있는데 왜 스테이크가 나오지? 결혼식에 마주한 스테이크를 보며 나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어차피 힘들어서 못 먹으니깐 이렇게 주는 거구나' 이제 끝났다는 안정감과 아침부터 분주히 그리고 정신없이 움직였던 우리의 몸은 '이제 빨리 좀 쉬자"라며 우리를 닦달했고, 저녁은 집에 가서 편하게 먹자며 정산실로 달려갔다.
나의 정산은 경력자 사촌형들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끝났다. 문제는 N의 정산이었다.N의 봉투를 1/4 정도 뺐을까? 뭔가 싸한 기분을 느꼈다. 영화 타짜에서의 '동작 그만'의 느낌이 나는 N의 목소리에 장부를 열어봤다. 장부는 눈에 띄게 깨끗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이러면 안 되는데...? 황급히 돈을 빼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리도 멈췄다. 사고회로 정지. 일단 내 쪽 장부와 금액의 이상이 없어 정산을 하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별도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는 정신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은 다름아닌 엽떡과 치킨이었다. 집에 출발하는 순간 시켰던 음식들은 우리의 힘든 여정을 반겨줬다. 집에 와서 우리의 것이었던 화장들을 깨끗이 지우고 바닥에 털썩 앉아 치킨과 떡볶이를 먹었다. 시간은 오후 5시정도. 평소의 반정도 먹었을때 배가 불렀다. 일단 눕자! 30분 정도 누웠다.
신혼여행이 2주였기에 오늘 받은 봉투와 돈을 정리해야 했다. 눈물을 머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엑셀에 봉투와 돈을 입력했다. 양가에 파일을 모두 보내고 나니 6시 40분. 나갈 시간이다. 다행히 우리는 여행에 필요한 짐을 집 한 구석에 쌓아놓고 있었고 10년간의 여행경력을 맘껏 활용하여 캐리어와 여행 가방 이렇게 모두 챙겼다.
일요일 저녁 한산한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의 짐을 위탁 수하물로 맡겼다. '맡긴 모습 그대로 아프리카에서 보자' 9시에 안전하게 입국장에 도착한 우리는 얼마전 만들었던 카드의 혜택인 라운지를 사용하러 갔다. 9시가 넘어 핑거푸드와 컵라면 , 맥주 이렇게 있었지만 그 순간 드디어! 라는 감정과 함께 행복감을 느꼈다.
11시 체크인 시간이다. 우리는 비상구석을 선택했다. 넓게 뻗을 수 있는 다리, 가까운 화장실 긴 비행시간에 완벽한 자리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항공사에서 주는 얄말로 갈아신었다. 우리나라 수면양말은 답답해서 오래 못 신겠는데, 여기 수면양말은 바람이 통하고 얇아 슬리퍼 겸 양말로 잘 신었다.
첫 비행기의 목적지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거기서 3시간 대기 후 최종 목적지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일정이다. 피곤했던 탓일까? 밥 먹고 자고, 밥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13시간의 비행시간 중 일어나있는 시간이 3시간 밖에 안되게 잘 즐겼다. 마지막 밥을 먹고 태양이 떠오를 때 우리는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다.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의 허브공항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이리저리 기웃대다가 버거킹으로 향했다. 역시 익숙한게 눈에 띈다. 다음 비행기에 기내식이 있는지 몰라서 일단 다람쥐가 도토리를 채우듯. 우리는 버거킹 와퍼세트를 배에 채웠다. 식후 커피는 한국 직장인의 기본 소향아닌가? 전통 커피를 파는 카페에 가서 전통 커피 2잔을 시켰다. 맛은 고소한 커피였고 아마 따라주는 방식이 전통이어서 그런건가? 싶었다. 커피를 마시며 바라봤던 서로의 얼굴은 기름기와 피곤함으로 가득했다. 불과 12시간 전에 우리는 누가봐도 예쁘고 아름다운 비쥬얼이었는데 지금은 막 일어난 아기곰들 같은 비쥬얼이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나를 바라보며 동그란 눈으로 커피의 소감을 말하는 N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생각했다.
그렇게 휴식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근데 왠걸 기내식이 제공되네? 우연치않게 더블 조식을 때렸다. 비행기에는 흑인, 여행온 것 같은 백인, 그리고 우리가 있었다. 동양인,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어쩌면 낯선 동네로 우리가 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런 감성에 취해있을 때 창밖을 바라봤다. 비행기 밖에는 마치 '여기야! 여기!'라고 외치듯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대자연의 풍경이 펼쳐졌다. 넓은 초원, 드문드문 있는 커다란 바오밥나무, 조금씩 움직이는 수많은 점들.
우리는 아프리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