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한 하늘, 고층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인 전망. 지금까지 동남아나 휴양지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면 느낄 수 있는 경치였다.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아프리카다. 탁 트인 전망에 버팔로나 사자가 뛰어다니는, 지금까지 여행지와 비슷한 전망을 보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느낌. 우리는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했다.
킬리만자로 공항은 우리나라 고속버스터미널보다 작은 규모의 귀여운 공항이다. 따로 탑승 게이트나 연결하는 계단 같은 게 없고 수화물을 직원들이 손으로 꺼내고 옮기는 작은 공항. 아프리카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 둘이 대견해서 박수를 치며 수화물을 기다렸다. 인천에서 헤어졌던 익숙한 녀석들이 직원들 손에서 우리에게 무사히 건내진 것에 감사하며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탄자니아는 비자가 필요한 국가이다. 비자를 인터넷으로 또는 현장에 발급할 수 있는데, 안정빵이 최우선인 우리는 인터넷으로 발급받은 비자와 여권을 손에 들고 심사관 앞에 섰다. 언제 떠나는지, 어떤 여행사를 통해 사파리를 하는지 간단한 질문 끝에 아프리카 땅에 공식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둘 다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우리가 예약한 여행사 Suricata 직원이 마중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린 사람 중 동양인이 우리밖에 없었기에 빠르게 우리를 알아보고 "잠보 잠보!" 외친 직원을 따라 공항 밖으로 향했다. 사실 이때 공항에서 환전과 유심을 사라는 블로그 후기들을 봤는데, 피곤했던 탓일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때 환전을 했어야했다.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사파리 첫 시작점인 아루샤(Arusha)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행사 프로그램 중 공항 픽업앱드랍 서비스가 무료로 포함되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평지, EBS에서 봤떤 마시이 복장을 입고 있는 양치기들, 뛰어노는 아이들. 너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드는 첫 인상이었다. 탄자니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에 일본처럼 오른쪽에 핸들이 달려있었다. 우리를 마중나온 운전사는 곳곳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탄자니아 대통령부터 보이는 건물이 어떤 것인지. 그렇다. 우리의 영어듣기 평가가 시작되었다.
나와 N은 그다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대학교 시절 N은 교환학생 지원을 위해 나느 취업을 위해 응시한 TOEIC은 그 학교 고사장에 익숙해지다 못해 마치 모교와 같은 편안함을 줄때쯤 원하는 점수를 만들었고, 말하기 시험인 TOEIC SPEAKING 이나 오픽은 만들어준 스크립트가 달달 외워져 나올 때쯤 원하는 성적을 냈다. 해외여행을 안 다닌 것은 아니지만, 주로 우리 둘이 얘기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였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극히 드물어 아래 문장들만 입에 벤 상태였다.
"HOW MUCH IS IT?" "THIS ONE AND THIS ONE"
"THANK YOU" "OKAY"
이 문장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충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생각하지만 가이드가 있는 그룹 투어에 속한 이상 이 문장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해야하는 환경에 속한 것이다. 그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뒤에서 "WOW", "REALLY?"라는 추임새를 넣는 티키타가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툭툭 이어진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운전사는 야속한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너무 밟았던 탓일까? 시내에 들어가는 건널목쯤에 하얀색 제북을 입은 누군가 우리의 차를 세웠다. 딱 봐도 경찰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과속인 데 어떻게 그들이 적색 신호에 속도를 줄였던 우리를 찾아났겠냐는 의구심이 들던 찰나에, 기사와 얘기하고 있는 경찰관 옆으로 망원경 같은 속도계로 저 멀리 달려오는 차들을 응시하는 경찰관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를 찾았구나. 운전사는 경찰관과 억울하다는 대화를 하다 벌금을 내고 다시 도로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탓에 적막했던 차 안은 더 어색한 기류로 발전했고, 이 기류가 더 팽창할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우리는 핸드폰의 구글맵을 켰다. 출국 전 표시한 숙소 위치가 나와있는 별과 지금 우리 위치가 나와있는 동그라미는 사뭇 먼곳에 떨여져 있었다. 아까 차 안에서 HOTEL어쩌구를 들은 거 같은데? 일단 로비가 들어갔다. 보스로 보이는 사람이 백인 커플 둘과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네가 김이구나. 탄자니아에 온 것을 환영해. 스와힐리어로 안녕은 잠보라고 해. 그다음 인사받은 사람은 뽀아나 잠바로 대답하면 되고. 올때 스와힐리어 안 그르쳐줬어?"
가르쳐줬다. 하지만 16시간 대장정을 마친 우리의 입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듯 굳게 닫혀있었다.
"잠보 반가워"
"뽀아뽀아"
다시 배운 스와힐리어로 인사를 하고 우리 숙소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먼저 우리 첫날 묵기로 한 숙소에 컴플레인이 많이 발생해서 동일 컨디션인 이쪽 숙소로 옮겼어. 하지만 너희한테 좋은 소식이 있어. 우리가 너희를 위해 둘째날, 셋째날 숙소를 업그레이드 해줬어. 에약하기 힘든 곳이고 만족도가 높은 곳이어서 너희가 좋아할 거야"
그리고 업그레이드라고 말한 숙소의 이름을 말해줬다.
'Suricata Bamba Lodge'
수리카타?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보스의 왼쪽 가슴에 있는 미어캣 그림 밑에 쓰여있는 글자가 보였다.
'Suricata Safari Tour'
이 자식들...! 전체 일정의 숙소에 대한 정보는 나만 알고 있었다. 물론 출국 전 PDF를 보여주며 브리핑을 N에게 했지만 기억할리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때가 잔금치르기 전이어서 숙소에 대해 바뀐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가격 협상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N은 숙소에 대한 정보가 없기에 내가 진행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컴플레인에 약하다. 직장에서 고객의 컴플레인을 처리하는 데 제법 능숙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가 컴플레인하는 것에 엄청 소극적이다. 고깃집에서 수세미 조각이 나와도, 무슨 일이 있어도 좋게 말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망가고. 그렇다. 나는 도망자였다. 이번에도 N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하고 쿨하게 거래를 받아들였다.(지금 보고 있다면 사실은 이랬어.)
바뀐 내용의 브리핑이 끝나고 복대에 소중하게 보관했던 달러를 꺼내 최종 결제를 했다.
"짐은 그룹 투어여서 캐리어는 어렵고, 배낭 15KG 이하로 해서 2개 정도를 실을 수 있어. 캐리어는 여기 로비에서 보관해줄거야. 내일 아침 6시 30분에 데리러 올게. 잠보!"
이 말을 끝으로 보스와 헤어졌다. 로비 직원에게 배정받은 방 키를 받아 방에 올라갔다.
지금 도착한 숙소는 SG Premier Resort. 말이 프리미엄이지 경주의 유스텔 정도의 컨디션을 보유한 숙소였다. 그래도 16시간만에 침대에 누울 수 있다니. 평소였으면 씻고 침대에 누웠을 N이 바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스프링에 몸을 튀기며 세상 행복한 기지개를 폈다.
세수를 하고 우리의 캐리어를 열었다. 여행다니며 처음 챙긴 육개장 10개와 김치 누룽지가 맨 먼저 우리를 반겨줬다. 내일 일정에 있어 짐을 배낭으로 옮겨야했기에 필요한 것과 없는 것을 분류했다.
육개장... 일단 아웃.
김치 누룽지... 5개만 챙기고.
그리고 샤워 도구.
그리고... 어...?
팔토시가 없네?
어? 사파리 모자 안 챙겼어?
어? 렌즈통이랑 리뉴도 없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가장 피해야하는 것은 모기와 자외선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 산 UV보호 팔토시. 머리부터 목까지 올인원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파리 모자. N의 선글라스 착용을 위해 필요한 렌즈통과 리뉴. 자외선 국가에서 필수적이라고 메모장에 가장 먼저 써놨던 것들이 메모장에만 있을 뿐,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다.
뭐 챙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