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나는 고민도 없이 핸드폰이라고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지금 정보를 얻기 위해 핸드폰을 개통해야 했다. 아까 가이드를 통해 개통을 부탁했는데 로비를 내려가자마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의 친구를 발견했다. 무심하게 우리 핸드폰과 여권을 들고 이리저리 전화기를 만지며 개통을 완료했다. 객실에서 내려오기 전 위태로운 와이파이에 의존해서 찾아봤던 시세랑 거의 비슷한 수준에 쿨 거래를 마쳤다.
거래를 마친 그에게 마트가 어딘지? 데려가줄 수 있는지? 를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대문자 파워 I인 나는 그를 쿨하게 보내줬다. 인터넷이 연결된 핸드폰 구글맵에 마트를 검색했다. 동네 문구점과 비슷한 수준의 마트가 두 군데 나왔다. 구글 리뷰 2건. 이걸 가야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보자라는 결심을 했다. 탄자니아가 달러와 실링을 같이 쓰는 국가이지만 이런 마트에서 달러를 쓰면 무척 손해라고 생각했다. ATM을 검색했다. 아까 찾았던 마트 쪽에 ATM 하나가 있어서 ATM들리고 마트가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고 밖으로 나섰다.
N과 나는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하루에 1번 30분 이상의 산책을 하며, 뚜벅이 여행을 사랑한다. 차를 산 지금도 그 매력을 못 잊고 기차타고 때로는 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해외여행을 다닐때도 뚜벅이 사랑은 여전했다. 뚜벅이로 다니면 주변에 신기한 가게가 있으면 궁금해하며 다 들어가보는 N의 앞으로 걷다 보면 자꾸 없어져서 허공이나 지나가는 사람의 귀에 둘의 이야기를 떠들었던 적도 많다.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걷는 것, 다니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향 자체가 안전에 민감한 탓일까? N에게 하는 주기적인 잔소리는 날카로운 가위나 칼을 바닥에 놓았을 때 (잠깐이라도 보이면 바로 잔소리머신이다.) 이며, 혼자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옆에 사람이 끼고 건넌다. (피치 못한 상황이면 대각선으로 건넌다.) 그런 내가 마주한 아루샤의 첫 인상은 좋지 못했다.
호텔 주차장의 가드를 지나니 큰 로터리가 바로 나왔다. 호텔 앞에 주유소가 있는 탓일까 큰 화물차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었고 오토바이들이 이제 해가 지고 퇴근할 시간임을 알리듯 바글댔다. 로터리에서 오른쪽으로 향했다. 인도인듯 인도 아닌 길을 올라섰다. 도로 가까운 쪽에 내가 먼 쪽에 N이 위치했다. 항상 둘이 산책을 갈 때 손을 잡고 다닌다. 너무 더울 때는 손가락만 잡고 다닌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괜히 표적이 될까 두려워 손을 잡지 않고 스칠락 말락 마치 썸을 타는 연인처럼 가깝지만 잡지 않는 오묘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여행을 할 때 여행자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 그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의 환경에서 적응이 될때쯤 고즈넉한 곳으로 가는 것이 수월했다. 하지만 지금 있는 아루샤의 거리는 누가봐도 로컬이었다. 교복입고 집에 가는 아이들, 저게 굴러가는 지 궁금한 오토바이를 고치는 사내들, 분주히 짐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전부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잡상인은 커녕 우리에게 관심도 없이 포근한 자신들의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여행 1~2주 차였으면 그 상황이 편안하게 느껴졌을텐데 지금 우리는 1일 차, 첫날이었다. ATM까지 걸리는 그 5분이 마치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이 된 마냥 사주경계를 하며 다녔다. 그렇게 추격자 아닌 추격자의 입장으로 ATM에 무사히 도착하고 실링을 출금했다. 탄자니아 화폐의 그림은 동물들인데 마주한 코뿔소의 마음이 샤랄라 녹았지만, 둘다 마트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왔던 길이어서일까 조금은 여유 있게 쫒기는 '제이슨 본'으로 호텔이 있는 로터리에 도착했다. 그때 보이는 피자집과 마트. 그렇다. 아까 우리 호텔에서 나오면 있는 주유쇼 앞 건물에 식당과 마트가 바로 았었다. 오늘 저녁은 무조건 컵라면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식당이라니. 감동하며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자리에 앉자 사장님이 메뉴판을 주셨다. 탄자니아 맥주는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사파리' 크게 3종류가 있는데 이번에는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그리고 식사로는 포크 피자와 양념 닭 날개를 시켰다. 시원한 맥주가 먼저 나왔고 우리는 결혼을 잘 끝냈다는, 그리고 낯선 곳에 잘 도착했다는, 마지막으로 성공적으로 환전은 마쳤다는 축배를 들었다. 고생 끝에 마신 맥주는 달았다. N도 맘이 풀린 듯 특유의 도토리 웃음을 지며 내게 말했다.
"아까 거기 갈 때 살롱 있었는데 들어갈 뻔했잖아"
뻔뻔하다. 아까만 해도 두려운 양처럼 발걸음을 옮기더니, 지금은 의기양양한 킬리만자로의 사자가 돼서 말하는 모습이 웃겼다.
"언제 그런 것도 봤대"
"당연히 봤지, 여기서 레게하면 쌀 거 같은데 아쉽다"
그렇게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풀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피자는 역시 맛있고 양념 닭 날개는 고추장이나 칠리 베이스 처럼 보였는데 커찹 베이스의 시큼달달한 맛이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닭보다는 사이즈가 커 역시 아프리카인가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아까 환전한 실링을 복대에서 꺼내 계산을 하고 옆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우리가 한국에 두고 온 물건들을 찾았다. 팔토시, 렌즈통과 리뉴 등 모두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과자 몇개를 샀다. 로비로 들어온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내일 조식 몇 시부터에요?"
"아침 6시부터 바로 앞 식당에서 해"
"고마워"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고 짐을 다시 꾸렸다. 사파리 모자는 없지만 챙모자와 야구모자가 있었고, 팔토시는 없지만 얇은 셔츠가 있었다. 그렇게 캐리어와 가방을 분리하고 탄자니아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