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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Jun 03. 2022

시를 잊은 그대를 돌아오게 하려면?

백세 번째 이야기

학부모님께 들려주고픈 자녀 교육의 비밀 

- 백세 번째 이야기 

<시를 잊은 그대를 돌아오게 하려면?>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교사들을 위한 여러 교류 프로그램도 존재했습니다.

저의 거주 및 활동 지역인 안성시 안에서도

안성교육청이 주관하여 

지역 내 교사들이 교수학습법을 함께 나누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당시 새로운 수업 방식에 관해 고민하고 또 시도하고 있던 저는,

우리 학교의 대표 교사가 되어 지역 내 국어 선생님들 앞에서

제가 운영하고 있던 수업에 관해 상세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수업은 

‘시 경험 쓰기’였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시집 한 편씩을 구매하고,

맘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그 시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작성, 발표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친구 이름으로 이름시 짓기 - 시 구절 찾기 – 시 감상하기 – 시 경험 쓰기 – 발표”     

와 같은 틀로 진행했습니다.     


수업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것,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 여윳돈이 생겼을 때 피시방에 가는 대신 

서점에서 시집 한 권을 구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기!     


수업은 –제 생각에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저의 경험을 솔직하게 읽어주며,

‘내가 하나 깔 테니 너희도 하나씩 까라’란 맘으로

편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판을 깔아 주었죠. 

그랬더니 아이들은 절대 평소엔 할 수 없던 솔직한 이야기를

눈물 콧물 다 빼가면서 

모두 표현해주었습니다.

부모님 이야기, 친구 이야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이런 수업 사례를 소개하는 동안

많은 선생님이 공감하고, 또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한 분이 계셨죠.     


지역 내 중학교에서 수석교사로 활동하는 분이셨는데,

그분은 제 수업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사례 나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다’라는 식의 지적은 금기입니다.

수업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아주 노골적인 비판을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판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왜 시 수업에서 반어나 역설 같은 표현방식은 가르치지 않죠?”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문제 풀이를 위한 이론 수업을 진행합니다.

한 학기가 다섯 달이라치면,

석 달은 수행평가, 두 달은 지필평가를 위한 수업을 합니다.

더불어 방과 후 수업이란 것도 운영하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수능이란 시스템을 절대 등한시할 순 없으니까요.

한 학기에 풀어내는 문제가 수백 문제는 될 겁니다.

방학에도 출근하여 방학 보충수업을 하고

심지어 3학년 땐 일 년 내내 문제 풀이 수업을 진행하죠.     


이렇게 여쭈려다 말았습니다.


“여기 계신 국어 선생님 중에, 최근에 시집을 사서 읽어보신 분 계신가요?”     


평소 시를 즐겨 읽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를 읽을 때 

‘여긴 역설, 여긴 반어’ 이런 식으로 

표현방식에 관한 고민을 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시를,

시로,

받아들일 뿐이죠.     


시는 우리의 삶을 닮아있습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 삶이 모호한 것처럼,

시도, 

모호합니다.

그래서 시를 온전히 느끼고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잘 살아내기 위하여!     


대입을 위한 이론 수업, 문제 풀이 수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만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우린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삶’을, 

가르치고, 또 알려주어야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접했던 아이들은

읽기도 잘 못 하고, 글도 잘 못 씁니다.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수필 한 편도, 

정말 형편없습니다.     


그나저나 참 놀라운 것은

과거 저와 함께 시를 온몸으로 느끼고 나누었던 그 아이들에 비해

지금 오직 ‘성적’만 강조하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은, 

그 성적마저도, 

월등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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