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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Jun 24. 2022

자녀 교육을 위해
어떤 투자를 해야 할까?

백열다섯 번째 이야기

학부모님께 들려주고픈 자녀 교육의 비밀 

- 백열다섯 번째 이야기 

<자녀 교육을 위해 어떤 투자를 해야 할까?>

          

오늘은 어느 문인의 삶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비극적 삶으로 인해 요절했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이야기입니다.     


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입니다.

1563년 허엽의 딸로 태어난 초희는

남들과 다르게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할 수 있었죠.

남들과 다르게?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했던 당시 사회에선

여성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생각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허나, 아버지 허엽의 생각은 달랐죠.

진보한 사고를 지니고 있던 허엽은 

딸에게도, 초희에게도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가르칩니다.

둘째 오빠 허봉이 직접 초희의 스승이 되어

정성껏 교육을 해주었죠.     


초희가 여덟 살이던 해 어느 날, 

오빠에게 글 한 편을 보여줍니다.

‘광한전백옥루상량문’     


스스로 신선 세계에 초대받음을 상상하며 쓴,

여덟 살 아이가 썼다고는 믿기 힘든

놀라운 수준의 글이었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죠.

그저 ‘가르친다’란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부를 때

‘초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늘 ‘난설헌’이라는 그녀의 호를 사용하여

그녀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었죠.     


더불어 허봉의 절친한 벗이자 당대 최고 문인, 

‘이달’을 난설헌의 스승으로 삼아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나태주 시인이 직접 시를 가르쳐주는….

아니, 이렇게 하면 더 와닿으려나요.

‘현우진 강사가 1:1 과외를 해주는’ 수준….     

난설헌의 시작詩作 능력은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더불어, 서얼庶孼이었던 이달은

조선 사회에 가득했던 

‘차별’에 관한 견해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난설헌의 글이 미적으로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진정한 교육에 관하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중요시하는 것까지야 그렇다고 해도,

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특정 직업군이 강요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죠.


어느 시대엔 경영학이,

어느 시대엔 공대가,

어느 시대엔 안정적인 직종이라며 사범대가,

또 요즈음엔 의대가….     


사회적 분위기가 

자녀 교육의 방향을 좌우할 이유는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남들과는 다른 지점에 주목함으로써

말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할’ 

인재를 양성해낼 수도 있지요.     


교육은 어쩌면

‘온전히 아이를 바라보는 것’

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자신의 아이만을 생각하며

바느질 대신 글을 가르쳤던 허엽이 있었기에,

허난설헌이라는 당대 최고 문인이 탄생할 수 있었듯

우리에게도,

아이가 가장 잘 할 수 있으며 

아이가 가장 행복해할 그것!     


그것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 뒷이야기


허난설헌은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혼인합니다.

김성립은 ‘장안유협 경박자’와 같았지요.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다가

과거 시험에도 늘 낙방합니다.

글재주가 뛰어난 아내에게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죠.

아마도 난설헌은 ‘며느리를 잘못 들여서’라는 

구박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유일한 위안거리였던 자식들마저

돌림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겨우겨우 가진 셋째는 유산되고 맙니다.     


아버지 허엽은 

경상도 관찰사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객사해버리고,

허봉은 율곡 이이를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귀양을 갑니다.     


난설헌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나봅니다.         

 

스물세살 지었던 이 시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인지 모릅니다.

정확히 스물일곱,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세상을 뜨며 동생 허균에게 

자신의 글을 모두 태워달라 부탁하는데,

허균은 누이의 유지를 받들지만

누이의 글을 암기하여 다시 필사하였고,

결국 난설헌집이 탄생합니다.     

물론 난설헌집은 ‘여성이 썼다’란 이유로

조선에선 각광받지 못했지만,

명나라와 일본에선 ‘베스트셀러’가 되어

역사에 허난설헌이란 위대한 문인이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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