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겠어서, 말야(1)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살아야겠어서, 말야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1) 이것 보쇼, 의사 양반!


사람의 성향을 열여섯 가지로 나눠놓은 성격유형검사, MBTI. 나의 그것은 INFP이다. 전 세계 79억 6천만 명을 16개 유형으로 나누어 나와 닮은 4억 9천만 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지만, 보편적으로 소개되는 INFP의 성향이 마치 나의 일상을 엿보기라도 한 듯 대부분 들어맞는 걸 보면 또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난 완벽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INFP이다.


무엇보다 난 집돌이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사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움직이는 걸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싫어하는 걸 넘어 아예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왼쪽 발목이 아작나버린 사건이었다.

임용시험 재수생으로 살 때, 매주 주말마다 대학 동기들과 축구 모임에 나갔다. 그래야 체력 유지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유지되었으므로. 평일마다 도서관에 처박혀 문예사조와 우리말 문법에 시달리고 있으면 사람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임용시험을 두 달 남기고, 시험 전 마지막으로 갖게 된 축구 모임에서 발목이 아작나버린 것. 그 시절 이후 그토록 사랑하던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축구는 개뿔, 운동 자체를 하기가 힘이 들었다. 결국 점점 밖에 나가길 스스로 거부하는 ‘리얼 집돌이’가 되어 버렸다.

직장이 생긴 이후에는 더욱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사회 초년생이자 초임 교사인 나의 과거는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상태였고, 퇴근 대신 남아서 학생들에게 상담을 해주거나, 퇴근 대신 선배들에게 인생 상담을 받거나, 했다. 주말이나 방학 때도 학교에 붙어 살 정도였으니, 집에선 그냥 잠만 자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몸이 상했다.


주량이 늘면 늘수록 체중도 늘었고, 체중만 늘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몸속 장기들이 버텨내지 못했다. 건강 검진 겸 위내시경을 찍으러 동네에 새로 생긴 ‘더편한장내과’(이름이 너무 믿음직스러웠다.)로 향했다.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공포스럽게 설명해주었다. 위궤양이야 원래 늘 달고 살던 병이었지만 충격적이게도, 공복혈당 수치가 높아져 있었다. 그런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럴 때 구원자는 네이버 지식인이 아니다. 당신도 알아야 한다. 당신을 협박하며 명령조로 말하고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의 구원자이다.


“선생님! 저 죽나요?”

“아뇨, 그런데 죽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여하튼 전 죽기 싫은데요…?”

“죽기 싫으면 물 많이 마시고…”

“물 많이 마시고…뭐요?”

“운동하세요.”


그래서 시작되었다, 나의 달리기가.

살아야겠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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