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똥손의 무모한 아니 위대한 도전-
(3) 급하지도 않은데 돌아가지도 않는
일단 태블릿. 생각지도 못하게 나에겐 LG 베스트샵 포인트가 20만 점 넘게 있었고 곧장 포인트를 모조리 써버렸다. 역시나 아주, 순조로웠다.
그나저나, 그림은 대체 어떻게 그리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나 아주, 순조로웠다. 유튜브엔 일러스트 선생님들이 엄청 많았다. 고르고 고르고 엄선하여 나의 선택을 받은 일러스트 선생님은 ‘솔생님’. 사실 다른 선택기준이 있던 건 아니다. 솔생님이라는 채널명이 내 무의식에 들어와 클릭이란 명령을 내렸다. 선생님의 수업을 잘 따라가기 위해 태블릿에 솔생님이 사용하시는 ‘오토데스크 스케치북’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선생님이 올려놓은 수십 개의 영상 중 ‘마마무의 화사 그리기’를 재생했다. 그리고 이건 힐링, 그 자체였다. 선생님의 손길은 거칠 것이 없었고, 화려했다.
솔생님이 아주 뚝딱, 아주 쉽게,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내는 동안 나는 뻔한 에세이 시장에 한 획을 긋는 화려한 ―어쩌면 뻔뻔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상상이 아닌, 망상이었다. 본격적인 그리기를 시도했으나, 시도는 시도에만 머물렀던 것.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태블릿 전용 정전식 터치펜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4B연필로 스케치북에 쓱쓱 그려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아니, 솔생님이 아주 뚝딱, 아주 쉽게,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내는 영상을 수십 번을 돌려보았는데 왜!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시도를 거듭하다 결국 화가 나서 펜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역시나 다혈질에 차분하지 못한 성격은 삼십 대가 되어도 여전한 것이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그렸던 수천 개의 원이 떠올랐다. 나는, 원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내 미술의 역사는 고작 콜라병이 최고이지 않았던가. 뭘 믿고 이렇게 덤벼들었을까. 태블릿을 사기 위해 투자한 20만 점의 포인트가 아까웠고, 일러스트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고 괜히, 솔생님에게 화풀이를 했다.
“뭐야, 이러고도 선생이라고? 내 직업도 선생이다. 그래서 안다. 교육이란 말이다, 자기가 잘하는 걸 뽐내는 게 아니다. 배우는 학생을 위한 과정 중심의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나름의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 같은 초보자는 어떡하라고 이렇게 어려운… ”
아뿔싸. 솔생님의 영상 목록엔 초보자용 강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