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충을 이기는 노력충에 관하여(1)

-일러스트, 똥손의 무모한 아니 위대한 도전-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재능충을 이기는 노력충에 관하여

-일러스트, 똥손의 무모한 아니 위대한 도전-


(1) 다혈질엔 약이 없어요


우리 집 서재에는 적지 않은 책들이 아주 예쁘게 꽂혀 있다. 나는 책 사는 걸 좋아한다. 읽는 것보다 사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이게 읽기를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읽기도 좋아하긴 한다.

그런데 그 책들 사이에 시퍼런 색의 두꺼운 클리어 파일이 하나 꽂혀 있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시절부터 모아놓은 상장, 임명장, 심지어 성적표 따위들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역사의 증표가 바로 녀석의 정체다. 가끔, 정말 가끔 추억팔이가 필요할 때 녀석을 들춰보곤 한다. 어린 시절의 통지표를 들여다보는 건 의외로 꽤 재미가 있다. 나에 대한 담임 선생님의 냉철한 평가가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다혈질적인 면이 있음’ 혹은 ‘성격이 차분하지 못함’과 같은 문장들을 보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지경이다. 역시나 선생은 선생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탁월하달까. 난 다혈질에 차분하지 못한 성격이 맞기 때문에. 완전 이백 퍼센트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6학년 때, 방학 한 달 내내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끓는 피를 식히기 위한 어머니의 ‘시도’였을 것이다. 심지어 통지표에서 가장 성적이 안 좋은 과목이 ‘미술’이기도 했으므로, 그 선택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부분이었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아주 대실패였다. 문제는 원. 원투쓰리포빠이브씩스 할 때 그 원이 아닌, 한 점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는 모든 점을 이은 선, 그 원! 나는 원을 그리지 못했다. 첫날부터 하루에 몇백 개씩 그려댔지만, 마음이 삐뚤어진 탓인가 도무지 제대로 된 원은 그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부터 꼬여버린 나의 미술 공부. 결국 한 달 동안 내가 그린 그림은 작은 원, 큰 원, 작은 네모, 큰 네모, 거기에 콜라병. 그게 다였다. 소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결국 한 달의 투자는 헛된 것이 되었고, 그렇게 미술과는 사이가 틀어진 채로 나의 십 대는 흘러가 버렸다.


미술은 내 인생에 더 이상 없는 것이었다. 원래 과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면 취미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은가. 절대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바로 미술의 영역이다. 나의 이십 대에 미술은 없었다. 미술 대신 그냥 술만이…. 이십 대뿐이었겠는가. 삼십 대가 되며 더더욱 미술은 삶의 울타리 안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없었는데, 어라? 들어와 버렸다. 없던 재능이 갑자기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 이건 있지도 않은 재능을 있는 힘껏 부풀리려는 노력에 관한, 아주 처절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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