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중독의 경계에 서서(1)

-Football Manager, 악마의 게임에 맞서다-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취미와 중독의 경계에 서서

-Football Manager, 악마의 게임에 맞서다-


(1) 형이 축구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대


내 또래 지구인들의 게임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건 단연코 ‘스타크래프트’라고 할 수 있다. 피시방에 모여 15분 러시(15분 동안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하는 약속)라는 이상한 룰을 만들어 무조건 캐리어와 배틀크루저의 싸움이 펼쳐지는 그 험한 전쟁터에서,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GG를 치는 패배자 역할을 맡곤 했다. 이후에 실력이 많이 늘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스타크래프트는 내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나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상황변화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다. 화려한 컨트롤과 끊임없는 두뇌 회전은 너무도, 귀찮으니까! 인프피들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최고다. 지금도 가만히 있고 싶다. 가만히 있는데도 가만히 있고 싶다.

게임 산업은 꾸준히 발전했다. 블리자드라는 유명 기업은 스타크래프트뿐 아니라 ‘디아블로’라는 어마어마한 RPG 게임을 출시하여 전 세계 유저들을 확보하는데 이르렀고, 당시 중학생이던 나와 친구들은 매일 같이 피시방에 모여 사냥을 나섰다. 국내 기업들도 연이어 게임을 출시했다. CCR이 제작한 ‘포트리스2’,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카트라이더’는 피시방 열풍과 더불어 남성들만의 고유물이라 여겨졌던 게임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피시방은 교복을 입은 남녀학생들의 만남의 장이 되었다.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는 또 어떠한가. 매니아 층을 완벽히 휘어잡아 지금까지도 그 열풍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대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겼던 인프피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다. 그 청년의 게임 역사를 뒤바꾼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노트북’의 등장이었다. 대학생 때 창동역 근처 화성시 장학관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던 내게 노트북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레포트나 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를 찾아 헤매는 건 시공간적 한계가 있었고, 결국 부모님은 복학 기념으로 ―거금을 들여― 삼성 센스 노트북을 선물해주셨다. 너무 기뻐 ‘삼순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그 노트북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수명이 다했지만, 녀석을 떠나보내는 게 너무 슬퍼 어디 묻어주지도 못하고 여전히 집안에 모시고 있을 정도로 내겐 참 귀한 존재였다.


‘화성시 장학관’이란 곳은 화성시에서 대학생을 위해 운영하는 기숙사였다. 나는 복학생이라 2인 1실을 배정받았는데, 노트북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룸메가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기존 룸메가 휴학을 해버려서, 더는 장학관에 살 수 없었던 것. 새로 함께하게 된 룸메는 매우 쾌활하고 밝은 한 살 어린 친구였고, 정말 노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 성격 덕분에 굳이 어색한 수고스러움을 들이지 않고도 금세 룸메와 친해질 수 있었고, 가끔 치킨을 사다가 휴게실에서 함께 뜯어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나저나 룸메는 노트북이 아닌 아예 데스크탑을 방에 설치했는데, 녀석은 틈틈이 이런저런 게임을 즐겼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날도 있었는데, 정말 처음 보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녀석이 게임하는 걸 감상하곤 했다. 사실 나에겐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는 게 더 재미있었으니. 그 상황이 좀 민망했는지 어느 순간 그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때 건넨 그 한마디가 나를 새로운 게임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형, 형 축구 좋아하지 않아요? 이 게임 형한테 딱일 것 같은데.”


그가 소개한 게임이 바로 세계 3대 악마의 게임, 축구 종가 영국에선 이혼율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중독성이 매우 심각한 게임, 회사원에겐 실직을, 수험생에겐 재수를 필수적으로 안겨준다는 그 게임, 바로 Football Manag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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