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Manager, 악마의 게임에 맞서다-
(3)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대학 졸업은 교사라는 꿈을 바로 이뤄주지 못했다. 그게 당연했다. 임용시험은 나 같이 놀고먹는 사람이 붙으면 안 되는 정도의 시험이었다. 매년 경쟁률은 30대1에 육박했고, 다들 치열하고 절실하게 준비하는 시험이었으므로 떨어지는 건 매우 당연지사였다.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순 없으니. 정신 차리고 1년 동안 임용 준비에 매진해보기로 했다. FM이 담겨있는 노트북은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고, 책 몇 권을 싸 들고 동네 무료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주일 동안은 거의 합격 수기만 보며 지냈던 것 같다. (그 합격 수기가 결론적으로 나와 FM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준 셈이기도 했다.) 국어 임용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다음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에 합격생들의 친절한 수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나가며 느낀 건, 너무 ‘새롭다’란 것! 수천만 원을 투자해 대학 졸업장을 얻어냈는데,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야말로 ‘헛산 인생’이지 않은가. 자괴감이 심하게 몰려들었고, 매일 아침 밥상을 차려주시는 어머니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지구인들은 이런 상황에 닥치면 꼭 남 탓을 한다. 핑곗거리를 찾기 마련이지…. 나 역시 평범한 지구인에 불과하기에, 탓할 존재를 찾아야 했고 그게 바로 FM이었다. 제어판에 들어가 온갖 욕을 해댄 후, 녀석을 언인스톨 해버렸다. 제거, 삭제, 지워버리기.
이후 자세한 삶을 논하는 건 너무 장황하므로 몇 가지만 살짝 언급하면 그 해 나는 공부를 참 열심히 했고, 덕분에 교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고, 직장이 생기고 나니 삶의 여유는 그리 넉넉지 않았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일해야 하니까. 그나저나, FM은 어떻게 되었냐고?
우리 집 컴퓨터에는 FM2023, 그러니까 가장 최신판의 Football Manager가 깔려있다. 어둠의 경로도 아니고, 프로모션 기간 중 할인을 받아 44,000원에 구입한 정품 FM이 떡하니 바탕화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중독의 길을 걷는 것 아니냐고? 당신의 걱정과 달리,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FM은 이제 중독이 아닌 취미로, 아주 가끔 즐기고 있음을!
FM 안에는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정보가 모두 반영되어 있어서 그간 몰랐던 선수들을 새롭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선수의 포지션이나 국적, 과거 몸담았던 팀은 어디였는지, 뭐 이런 소소한 정보들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주말마다 유럽 축구를 시청할 때, 월드컵에서 다른 국가의 선수들을 알아볼 때면 ‘아, 쟤가 걔구나’ 하며 더욱 흥미롭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딱 그 정도이다. 그 정도로만 FM을 즐기고 있다.
조금 의아한 것은,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알아서 그 시간이 적절히 조절된다는 것이다. 철이 들었다고 해도 되는 부분일까? 이래서 사람이 바닥까지 떨어져 봐야 한다. 정말이지 내 인생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이제는 아는가 보다. 그래서, 취미는 취미로만 즐길 수가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즐기기 위해’ 시작했음에도, 너무 과몰입하여 집착 혹은 중독 증세를 보이는 건 아닐지 한 번쯤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래야, 더 나은 당신의 삶이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