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누군가 내게 노래 한 곡을 추천해달라 말한다면, 그럴 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가장 오랜 시간 재생 목록에 머물고 있는 한 노래, <양파를 썰었어>. 혹자는 발음으로 인해 ‘양팔을 썰었어’인지 ‘양파를 썰었어’인지 헷갈리곤 했지만 분명히 양파, 어니언, 다마네기, 바로 그것이다.
네가 좋아하던 노랠 듣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에
난 양파를 설었어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를 보다가
난 양파를 썰었어
난 양파를 썰었어 오늘도
- <양파를 썰었어> 中
양파는 늘 조연이었다. 조연이 주연이 되는 걸 지구인들은 그리 반기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도 조연이면서, 자기 자리를 빼앗는 것도 아닌데 다들 이를 막으려 애쓴다. 그래서인지 양파는 좀처럼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의 부조리를 깨부수기 위해선 누군가의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 결단을, 내가 해 보았다.
양파가 주연이 될 요리, 초 간단 양파덮밥. 양파 한 개를 잘게 썰어 기름에 볶아 캐러멜라이징 시켜주고, 진한 갈색빛이 돌면 물 조금, 간장, 설탕, 맛술을 넣고 끓여준다. 이때 달걀물을 풀어 함께 끓이면 완벽한 일식 느낌을 낼 수 있다. 가쓰오부시라는 사치까지 부릴 수 있다면 완성도는 더 높아진다! 흰 쌀밥 위에 얹어 덮밥 느낌으로 먹어보자. 이처럼 간편하고 맛도 좋으며 심지어 고급스러운 한 끼라니. 양파도, 주연이 될 수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양파가 주연인 요리도 즐겨보면 어떨까. 양파덮밥을 넘어 양파장아찌, 양파튀김 등 방법은 많다. 그런데 정말 가끔, 가끔이면 좋겠다. 양파가 주연인 날은 어쩌면 당신이 무척이나 슬프단 것일지도 모르니까. 슬픈 건 정말 가끔, 가끔이면 좋겠다.
양파를 처음 썰었던 날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첫 경험은 분명 눈물과 함께였다. 눈이 맵고 쓰라려 계속 껌뻑여야 했고, 그렇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나가다가 나의 눈물에 의아했더라도, 사람들은 으레 ‘양파 써느라 그렇구나’라며 계속 그렇게 지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눈물을 왕창 쏟아내고 싶을 땐, 그리고 그 눈물의 의미를 감추고 싶을 땐 있는 힘껏 양파를 썰어야겠다고. 혼자 집에 있을 때도, 눈물이 날 때면 얼른 양파를 꺼내 썬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궁금했다. 왜 눈물 나는 순간은 감춰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사람들은 참 많이도 웃는다. 그 웃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우는 사람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왜 저래’라고 수군대며 눈물의 주인을 향해 혀를 끌끌 차는 광경도 목도하게 된다. 슬픔은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란 말인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에 관해 학습할 때 특정 감정이 우위에 있으며 특정 감정은 보편적인 게 아니라는 얘기는 전혀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슬픔은, 그리고 슬픔의 발현인 눈물은, 꽁꽁 숨겨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지구인들 모두 조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연들은 주연이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연기를 할 것이다. 아니, 주연인 척하는 중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주연은 행복하기만 할 거라는 오래된 착각이 지구인들을 뒤덮어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다들 일곱 가지 중 몇 가지만 드러낸 채 기를 쓰고 살아내는 중일지도. 솔직히 대답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준다면, 당신에게도 꼭 묻고 싶다.
“당신 지금, 행복한 거 맞아?”
나도 흔하디흔한 지구인에 불과하여, 연기가 점점 늘고 있다. (언젠간 주연이 될 수 있을까?)
양파가 주연인 요리는 정말 가끔, 가끔만 즐긴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땐, 눈물을 왕창 쏟아내고 싶을 땐, 그리고 그 눈물을 감추고 싶을 땐, 혼자 집에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양파를 꺼내 썬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나에게도 난, 연기를 하는 중이다.
언제나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당신만큼은― 슬픔을 억지로 감추지는 않았으면 한다. 억지로 안고 쌓아두면 더 아플지 모른다. 내가, 옆에서 양파를 썰어줄 테니 맘껏 울어도 괜찮아…….
울고 싶을 때 맘껏 우는 것도 지구인의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 되기를, 나의 연기가 미숙하고 형편없는 발연기가 되기를, 양파가 주연인 요리는 더 늘어나지 않기를, <양파를 썰었어>를 들으며 바보같이 양파를 썰고 있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