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과정이 있고, 단계가 있다. 무턱대고 앞서가려다 보면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거나, 무너져버릴 수 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어른들은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여야 하는지만 강조하는 어른들은 도달하지 못한 아이에게 비난을 가했고, 아이는 어른이 된 후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였으며, 그 방법의 하나로 ‘그림책 읽기’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도통 글을 읽어내지 못한다. 아니, 평소에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국어 교사도 단번에 읽어내지 못할 고난도의 지문을 해결하라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읽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주고 찬찬히 단계를 밟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림책! 그림책은 실로 위대했다. 짧은 글과 앙증맞은 그림은 반드시 ‘사유’로 이어졌다! 읽고 덮어버리면 그대로 끝이 나는 글은 결코 좋은 글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난 뒤 생각의 페이지를 열어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단어를 새겨나가는 것이 진정한 읽기의 완성이 아닐까? 아주 쉽게 아이들에게 그 ‘읽기의 완성’을 선사해줄 수 있는 그림책은 오히려 나를, 신세계로 이끌었다. 그림책을 곁에 둔 나는 오늘도 새로이 태어나는 중이다.
데이비드 매키의 <여섯 사람>,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김효은 작가의 <나는 지하철입니다>와 같은 유명 그림책을 읽으며 나의 시선이 가진 폭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림책은 내게 옛 성현聖賢들과 진배없는 위대한 스승이었으므로, 주기적으로 새로운 그림책과 만나기를 시도했고 얼마 전, 또 다른 스승을 만났다. 그런데 이번 스승의 첫인상은 좀 별로였다. 엄청나게 못생긴 달걀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달걀은, 아주 근엄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시오타니 마미코 작가의 <나는 달걀입니다>라는 그림책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달걀의 정중한 부탁으로 시작된다. 생각의 필요성, 주변인을 대하는 태도 등 달걀이 보여준 사유의 단면들은 지구인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었다. 그리고, 그 여러 장면 중 가장 강력하게 나를 일깨운, 마치 날달걀로 대가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적인 대사가 있었으니.
“생각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거의 전해지지 않아요.”
달걀은 연이어 이렇게 말한다.
“두드리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고, 일어나면 움직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바보 같던 달걀 녀석도 마시멜로도 내가 왜 두드리고, 잡아당기고, 간질이고, 베어 문 건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뿔싸! 나는 멍청한 달걀이었구나! 사랑하면 나 역시 그대로 사랑받는 줄 알았고, 기다리면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이뤄질 줄 알고 있었으며,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괜히 짜증을 내거나 답답해하곤 했다. 한마디 말도, 안 했으면서. 오직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으면서.
달걀의 말은 결국 ‘용기’였다. 날 지켜보고 있기라도 했던 건가. 바보 같은 어설픈 인생에서 벗어나길 바란 게 아닐까 싶다. 굳이 이 타이밍에 내 앞에 나타난 걸 보면 달걀 역시도 ―좀 못생기긴 했지만― 위대한 스승임이 틀림없다.
이 글을 읽을 불특정 다수에게 한꺼번에 갑자기 사랑 고백을 할 수는 없으므로, 그간 나만 알고 있던 비밀 한 가지를 밝히려 한다. 그건, 완벽한 삶은 달걀을 만드는 방법이다. 당신은 아마 내게 감사할 것이다.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몰랐을 테니.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식사를 위하여 ―마치 냉장고가 태어났을 때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정해진 곳에 얌전히 머물고 있는 달걀 무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계란프라이나 프렌치토스트가 아닌 ‘삶은 달걀’을 먹고자 한다면, 앞으로 이렇게 조리해보면 어떨까.
당신은 당신의 취향에 따라 달걀을 삶는 시간을 조절하겠지? 나도 그랬고, 때론 성공했으며 ―심지어 시간을 쟀음에도― 때론 실패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에 따라 아침의 기분이 일희일비 되곤 했다. 삶은 달걀 하나에 내 기분이 좌우되는 게 싫었던 난 나만의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제, 달걀을 삶을 때면 과감히 삶는 시간을 깡그리 무시한다. 이게 나만의 위대한 비법이다!
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 때 과감히 불을 끄고, 찬물에 달걀을 헹구고, 껍데기를 까보도록 하자. 어떤 날은 완숙이, 어떤 날은 반숙이 당신을 노려볼 테지. 그 장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완숙은 완숙대로, 반숙은 반숙대로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해보자. 성공에 취해 방심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실패에 좌절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아예 그 실패를 차단하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렌터 윌슨 스미스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중
어찌 되었든 앞으로 난 용기 내어 고백하거나, 나만의 비밀을 전하며 당신과의 거리를 좁혀나갈 테다. 그렇게 하라고, 나의 달걀 스승님이 말해주었으니까. 그러니 당신도 내게 용기를 내어 주길.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모든 순간을 지혜롭게, 아름답게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