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뉴욕 치즈 케이크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우리는 흔히 뉴욕 치즈 케이크를 치즈 케이크의 원조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역사는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이미 그리스 사모스 섬에는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케이크 틀이 있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로마가 그리스를 점령하면서 치즈 케이크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로마 제국의 확장은 유럽 곳곳으로 치즈 케이크를 전파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은 그들만의 ‘뉴욕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냈고 비로소,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디저트가 개발되었다. 입에서 살살 녹아 그 풍미로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뉴욕 치즈 케이크!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주 스마트하고 잘생기고 덩치도 거대한 오븐이 ―안 그래도 좁디좁은― 집 안에서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뒤 이 녀석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건 정말 예의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 ‘오븐 요리’를 검색했더니 수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왔고 정말 차근차근 하나하나 정성껏 살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베이킹 요리가 많은 거지? 줄곧 이어진 베이킹 영상들은 ‘뭐해? 도전해봐!’라고 말하는 듯했고 난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


그렇게 며칠, 아니 몇 주가 지났다. 정작 오븐을 사놓고 오븐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건 햇반이나 냉동식품 따위에 불과했으니, 오븐도 자존심이 상했을 거다. 오븐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건 역으로 내 자존심이, 너무도 상했을 때였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 말았다. 그것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세계 최강 전력의 포르투갈을 극적으로 꺾고서, 말이다.

조별리그 성적은 그전까지 1무 1패, 아주 초라했다. 마지막 경기의 상대는 H조에서 가장 까다로운 팀이었는 데다가 우리나라 수비의 핵심인 김민재 선수는 부상으로 결장이 예고된 상태,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여론은 갈렸다.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며 벤투호의 실패를 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끝까지 응원하는 게 답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난, 당시의 상황을 아주 간단한 한마디로 ―코웃음을 치며― 표현했다.

“우리나라가 이걸 어떻게 이겨!”


당신도 결과를 알고 있을 테니 경기에 관해 논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난 기쁨과 슬픔이 절묘하게 섞인, 생각지도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내가 아니라 나에게, 세계가 코웃음 치는 듯한 패배감은 다행히 나를 다시 오븐 앞으로 이끌었다. 절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 이럴 땐 참 마음에 든다. 영상을 다시 찾아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고 당장에 뉴욕 치즈 케이크 만들기에 돌입했다. 괜히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신들이 먹는 음식일 것만 같고, 괜히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신비로운 음식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치즈 케이크 아닌가? 그까이 꺼, 내가 못 할 것 같아? 이게 바로 태세 전환이야!


베이킹의 기본은 계량이다. 1g의 차이가 맛의 차이뿐 아니라 음식의 완성에 있어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되기도 한다. 섬세함이 필요하달까. 투박함과 눈대중으로 무장한 나로서는 굉장히 어색하고 낯선 분야라 할 수 있지만, 그까이 꺼, 내가 못 할 것 같아? 인터넷을 살짝만 뒤져보아도 아주 간편하게 계량하는 방법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래서 발견한 초특급 필살기, 이름하여 종이컵 계량!

잘 녹은 크림치즈 두 통 400g과 꿀 두 숟갈, 레몬즙 한 숟갈을 잘 섞어준다. 섞다 보면 마치 마요네즈처럼 꾸덕꾸덕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달걀 하나를 깨 다시 섞어주고, 박력분을 종이컵 반 컵 분량으로 체에 걸러 잘 뿌려준다. 그리고 다시 미친 듯이 휘저어주면 반죽 완성. 반죽은 너무 오래 저으면 안 된다. 오래 저으면 저을수록 글루텐이 많이 만들어져서 케이크의 질감이 질겨질 수 있다고 하니 딱 1분만, 오케이? 아, 조금 더 단맛을 원하면 설탕 반 컵 분량을 더해주는 것도 포인트가 되니 참고! 완성된 반죽은 다이소에서 사 온 원형틀에 종이 포일을 깐 뒤 잘 부어주면 되는데, 다 부은 다음엔 젓가락을 휘휘 저으며 공기 구멍을 찾아 없애줘야 한다. 이제 예열된 오븐에 160도, 50분! 더운 공기를 잘 쐬어주면 그토록 기다리던 뉴욕 치즈 케이크가 짜잔, 하고 나타나겠지?

아뿔싸!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오븐을 열자마자 새까맣게 타버린 괴생명체가 등장했고, ‘약간 바스크 치즈 케이크 같지 않아?’라고 자위해보았으나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은 괴생명체는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알잖아? 난 절대 지고는 못 하는 성격이라는 걸. 참 마음에 드는 성격이다. 나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도 이건 꼭 배웠으면 좋겠다. 시험을 망쳤다고 울고불고할 시간에 냉정을 유지한 채 ‘오답노트’를 써야 한다는 걸. 슬퍼할 시간에, 분석을 해야지!

분석 결과는 다름 아닌 물, 따뜻한 물이었다. 적당한 양의 물을 오븐에 함께 돌려주면 타지 않고 촉촉한 케이크가 만들어지는데, 그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째, 당장 마트에 달려가 다시 크림치즈를 사 왔고, 처음부터, 다시, 케이크 만들기를, 시작했다!

뉴욕 치즈 케이크.jpg 놀랍게도, 우리집 오븐에서 나온 뉴욕 치즈 케이크!


뉴욕 치즈 케이크 그까이 꺼, 지금은 눈 감고도 성공할 정도로 아주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몇 번 연습했더니 라면 끓이기만큼이나 쉬워진 경지에 올랐다. 알고 보면 세상만사가 다, 그러할진대 말이다. 더불어 지금,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진― 난 함부로 방어기제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 머무르고 안주하며 합리화된 나의 하루는 초라하고 형편없는 안이한 모습이 될 거란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으니까. 새까맣게 타버리더라도 끝까지 도전하고 부딪혀보는 것이 더 나은 삶이 되리란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까.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모습이어도, 상상만 해도 오글거리는 그런 장면이어도, 당신의 도전을 응원하는 내가 곁에 있을 테니! 더 화려한 당신의 내일을 꿈꾸며 끝까지 도전해주길, 그리고 언젠가 우리나라가 브라질을 꺾고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길, 내가 세계에 대고 당당히 코웃음 치는 그런 날이 오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걸 기억하면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뉴욕 치즈 케이크.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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