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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Jul 10. 2024

아주 값비싼 편견에 관하여

<교사의 단어 수집>-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편견

명.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학교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 중에는 결국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나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분실사고’.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한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걸 절대 원하지 않지만, 남의 것을 훔쳐 가는 아이들이 적잖게 존재하는 걸 보면 교육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지 않을 수 없다. 

분실의 대상이 되는 목록에는 참 다양한 것들이 올라오는데, 10년 전쯤엔 단연 현금이나 지갑이 1순위였다. 특히 ‘반 티 값’을 걷어 총무가 보관하는 체육대회 시즌이 되면 학급이 난리 통에 빠지게 되곤 했고 첫 담임을 하던 그해에도 사고가 있었다. 우리 반 총무부장 학생이 다급히 교무실로 찾아와 말했다.     


“쌤, 봉투가 비어 있어요!”

“봉투를 어디에 넣어뒀는데? 다른 데 둔 건 아니고?”

“가방이요. 가방을 뒤진 흔적이 있다니깐요!”     


가방 속에 꼭꼭 숨겨 두었건만 이동 수업 중 봉투 속 수십만 원은 자취를 감춰버렸고, 초짜 담임은 돈 봉투 보관만큼은 직접 해야 했음을 뒤늦게 후회했다. 요즘에야 아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폰뱅킹을 사용하기에 별문제가 없지만, 당시엔 정말 교실 문단속은 물론 개인 사물함 자물쇠 설치에 엄청나게 주의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아, 그때 사라진 금액은 내 용돈에서 메웠었지 참…….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짧은 사이에 세상이 너무도 변했다. 요즘에도 분실사고는 끊이지 않지만, 그 분실 목록에 올라오는 대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1순위는 누가 뭐래도 ‘에어팟’. 모르는 이들을 위해 친절히 설명하자면 이건 아이폰 전용 ‘줄이 없는 이어폰’이다. 이어폰이 비싸 봤자 이어폰이지, 할 수도 있는데(나도 그랬다) 의외로 상당히 고가인 상품이다. 자, 초록창에 ‘에어팟’을 검색해봅니다. 얼마인지 보이시죠? 삼, 삼십만 원대! 솔직히 말하면 10대 청소년이 수십만 원 상당의 이어폰을 쓴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왜 굳이? 난 올리브영에서 산 만오천 원짜리 이어폰을 쓰는데 그것도 절대 성능이 나쁘지 않거든. 아니, 값도 비싼 데다가 크기도 작아 분실 위험성이 크다는 걸 알면 애초에 사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너희도 만오천 원짜리 이어폰을 쓰면 되잖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이건 나의 편견이었다. 수업 시간, 만오천 원짜리 이어폰의 장점을 역설하던 내 앞으로 다짜고짜 우리 학교 밴드부 부장 심건반 학생이 다가왔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을 뚫고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 번 들어보세요.”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에어팟 한 쌍. 나는 조심스레 양쪽 귀에 녀석들을 꽂았고 잠시 후 난 가만히, 아니 정확하게는 ‘저절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몸은 BTS의 콘서트장으로 이동했고 그곳은 어쩌면 잠실실내체육관? 수만 명의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소녀시대로 틀어주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참. 신세계였다! 너, 너희들, 비싼 이어폰을 쓰는 이유가 있었구나?     

에어팟 그 녀석, 성능이 아주 대단했다. 한 번 맛보면, 아니 한 번 귀에 꽂아 들어보면 절대 다른 이어폰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달까. 무엇보다 노이즈 캔슬링, 그러니까 잡음 제거 능력만큼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다. 소리는 물론 주변 시야까지 차단하게 해주는 듯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 아주 제격이었고, 인터넷 강의를 시청하거나 음악 감상을 하는 이에겐 아주 필수 아이템임이 분명했다. 에어팟, 너를 21세기 최고까진 아니라도 10대 발명품 정도로는 인정한다!      


앞으로도 세상이란 녀석은 멈추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겠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모두의 분실 목록 1순위로 ‘편견’이 올라가 있길 바란다. 물론, 나부터 그러할 것이나 다만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소중한 건 절대 분실하지 않도록 애썼으면 하는 것이다. 소멸과 생성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작금의 시대에서 소중함이 사소함으로 전락하는 일이 너무도 잦다. 그러다 보니 ‘관계’마저도 이용 가치로 판단되곤 하며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좋은 어른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면 나부터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지? 좋은 어른이 되려면 우선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저녁엔 ―빌린― 에어팟을 꽂고 최신 아이돌 그룹의 신곡을 들으며 마라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뒤 후식으로 탕후루를 사 먹어 볼 생각이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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