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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Jul 23. 2024

어른은 신이 아니다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섣부르다


형. 솜씨가 설고 어설프다.




‘급식충’이라는 속어가 있는데, 아마도 여기서 ‘충’이라는 글자는 벌레를 의미하겠지만 나에게 ‘급식충’의 ‘충’은 ‘충만할 충(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난, 급식을 먹기 위해 출근하는 교사……     

점심시간, 마침 그날의 메뉴는 뜨끈한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었고, 전날 과음에 지쳐있던 교사에게 국물 한 모금은 생명수와 같았다. 몇 숟갈만 더 뜨면 다시 컨디션을 회복하여 다시 회식 자리로 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때였다. 다급히 반장 녀석이 교직원 식당으로 뛰쳐 들어왔다.     


“쌤, 애들 싸워요!”     


그때 나도 모르게 국어 교사다운 라임을 뱉었던 걸로 기억한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이런 개 같은…….”     


다툼의 주인공은 엄덩치군과 김멸치군이었다. 덩치군이 멸치군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고, 덕분에 멸치군은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라 마치 멸치 대가리에 고추장을 바른 것만 같은 상태였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라니.      

멸치군이 치료받는 동안 덩치군은 교무실에서 성질 더러운 담임 교사에게 쉴 새 없이 꾸지람을 들었다. 덩치군은 3년 내내 같은 담임 학급에 배정받은 학생이어서 그 담임은 덩치군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마치 담임처럼― 한 성깔 하는 성질이 있어 평소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줄곧 지적받아왔던 사실도.     


‘넌 아무리 혼이 나도 달라지지 않는구나’,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주먹이 나간 순간부터 모든 잘못은 너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었느냐’, ‘사회였으면 교무실이 아니라 철창에 갇혀있을 수도 있다’, 따위의 말들이 속사포처럼 담임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욕만 안 했지 거의 욕을 한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조금 과할 정도로 혼을 내고 보니 순간 걱정이 들었다.      


‘이 녀석 이거 욱해서 담임한테도 덤벼드는 것 아냐?’     


어라? 의외 아닌 의외의 상황이었다. 덩치군은 담임이 민망할 정도로 말이 없었고, 그저 딱 한 마디만 속삭이듯 말할 뿐이었다.     


“죄송해요, 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호실에 갔던 멸치군이 치료를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왔다. 여전히 고추장이 발라진 것 같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는데, 역시나 또 이상했다. 멸치군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담임 앞에 섰다.     

“죄송해요, 쌤.”     


역시나 의외 아닌 의외의 상황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얘를 어떻게 달래줘야 상황이 잘 해결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멸치군이 알아서 먼저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그제야 ‘죄송하다’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자신이었으며 장난으로 덩치군을 놀리다 실수로 막말을 뱉은 것이 화근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뿔싸, 순간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왜 이 사건을 일방적인 폭행으로만 간주했을까. 제대로 경위를 파악하기도 전에 말이다. 두 친구 모두 자신이 가해자라 외치는 이 역설적 상황 속에서, 오직 어른이란 이유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착각한 담임 교사는 생각했다.     


‘가해자는, 나였구나.’     


그날 저녁, 회식을 빠지고 대신 상담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급식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싶기도 했으나, 대신 엄덩치군을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었다. (김멸치군은 요양을 위해 집에서 쉬어야 했다) 동네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돈가스를 파는 가게에서 덩치군은 한 조각도 남김없이 왕돈가스를 먹어 치웠다. 식당에 들어설 때까지는 낮에 벌어진 사건 때문인지 우울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맛있는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적어도 먹는 동안은― 표정이 괜찮아졌다. 참 순수하구나, 싶었다.     


어른들이었다면 서로가 자신의 피해만을 논하며 이기려고만 할 테지만 아이들은 순수하기에, 오히려 서로 지려고 한다. 내가 이기는 것보단 관계의 소중함을 더 중히 여기기 때문이겠지. 그런 아이들에게 섣부르게 판단하여 상처를 주는 과오를 범해선 안 되겠다. 그들의 순수함이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어른은 신이 아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모든 등장인물의 속마음, 모든 상황, 앞으로의 전개 같은 것들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래서 늘 신중하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아이들이어도, 아니 상대가 누구든 어른은 늘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세계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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